척 헤이글 전 미 국방장관.

바이든 미 행정부가 한국 등 아시아 동맹국들과 핵무기 전력에 대한 구체적 정책을 함께 논의하는 ‘아시아 핵기획그룹(ANPG)’을 창설해야 한다고 미국 및 유럽·아시아 전직 외교·국방 장관들이 제안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처럼 아시아 동맹국들도 미국의 핵무기 정책 논의에 참여하고 핵 사용 결정 과정에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 심각하게 손상된 미국의 ‘핵우산’ 신뢰를 회복하고,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지 모른다는 동맹들의 의구심을 불식하기 위한 방안으로 해석된다.

미 시카고국제문제연구소 주관으로 결성된 특별연구회는 지난 1년간 연구 및 토론을 통해 이 같은 결과물을 담은 보고서를 12일 발간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척 헤이글, 말콤 리프킨드 전 영국 외교·국방장관,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가 공동의장을 맡았고, 한국에선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참여했다.

이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외교 정책을 전면 검토하면서 ‘동맹 회복’을 공언했지만, 구두 약속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고 했다. 60년대 유럽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안전 보장 약속을 안심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나토 핵기획그룹’ 같은 기구가 북한·중국의 핵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아시아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시아 핵기획그룹에는 한국·일본·호주의 최고위층 정치 지도자들이 포함될 수 있다”며 “기존의 상호방위조약을 대체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강화해줄 것”이라고 했다.

이상희 전 국방장관(왼쪽)과 윤병세 전 외교장관.

나토 회원국들은 미국과의 협정에 따라 핵무기 정책 논의에 참여하한다. 핵 사용 최종 결정권은 미국 대통령이 갖고 있지만 핵 통제권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 같은 모델이 적용돼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핵 사용 결정에 한국 입장을 반영할 수 있다면 의미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2019년에도 미 국방부 산하 국방대학이 한·미·일이 ‘핵무기 공유 협정’을 맺어 북 도발을 억제하고 중국에 대한 압력을 키우자는 제안을 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나토식 핵 공유는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특별연구회는 또 한국의 참여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쿼드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참여국들은 궁극적으로 이 대화체에 한국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인도, 일본, 호주 4국이 참여해 2019년 결성된 쿼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대(對)중국 견제의 가장 중심에 있지만 우리 정부는 참여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