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한·미 관계를 ‘가스라이팅’에 비유하고, ‘동맹 중독’ 등으로 표현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측의 급격한 동맹 해체가 아니면, 미군 철수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정이 될 수도 있다”고도 했다. 국립외교원은 우리 정부의 외교 싱크탱크격으로 원장은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김 원장은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를 지낸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과 같은 연세대 정외과 출신으로,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함께 이른바 ‘문정인 사단’의 핵심 멤버로 꼽힌다.
김 원장은 30일 공개한 저서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새로 읽는 한미관계사’에서 한미동맹을 ‘신화'로 규정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간 불협화음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립외교원 수장의 이 같은 인식을 밝히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김 원장은 자신의 책 소개글에서 미국에 주권국으로서 대응하지 못하는 한국의 입장을 거론하며 이런 한국을 “일방적인 한·미 관계에서 초래된 가스라이팅 상태”라고 진단했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 한국을 “미국에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정의하고 이같은 가스라이팅이 “사이비 종교를 따르는 무리에서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미국이 한국의 판단력을 흐리게해 미국에 더 의존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오랜 시간 불균형한 한·미 관계를 유지하느라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됐고, 이러한 ‘동맹 중독’을 극복하고 상호적 관계를 회복해야 건강한 한·미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책에서 미국에 대해 ‘한국을 전쟁에서 구원해 준 은인이자 공산주의에서 한국을 보호하는 힘 센 우방,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되는 세계 최강국’ 등으로 묘사했다.
그는 특히 “(6·25)전쟁으로 한미동맹이 생겨난 만큼,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은 동맹의 축소 또는 해체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며 “미국측의 급격하고 일방적인 동맹해체가 아니라면, 한미동맹의 유연화 또는 더 나아가 미군 철수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정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대북 강경책은 보수정부의 전유물처럼 인식됐고, 미국에 대한 충성서약과 같았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