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과학연구소(ADD) 퇴직 연구원이 국내에서 개발 중인 정밀유도무기 기술을 아랍에미리트(UAE)에 넘겼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1년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구원이 유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술은 국제적으로도 수조원의 가치를 인정받는 기술임에도 우리 정부는 UAE와의 외교마찰을 우려해 대놓고 문제를 제기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UAE 측은 2018년 초 청와대 고위 관계자 등으로부터 무기연구소 개발을 위한 지원방안을 제안받은 후 협의에 응하는 척하다가 뒤로 우리 기술자를 빼간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UAE 측의 외교 결례와 함께 우리 정부의 안일한 자세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ADD와 경찰 등에 대한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019년 ADD 1본부에 근무하던 A연구원은 ‘아내가 미국에 있다’는 이유로 연구소를 중도 퇴사했다. 그런데 이 연구원은 미국이 아닌 UAE 현지 칼리파대학 부설 연구소에 취업했다. 이 연구소는 UAE 정부가 한국의 ADD 형태로 키우려는 곳으로 알려진다.
A연구원은 정밀유도무기를 연구하는 ADD 1본부에서만 약 30년간 일했던 베테랑이다. ADD 고위 관계자는 “A연구원이 유출한 기술 무기는 미사일 탄약 추진체를 멀리 날리는 ‘비궁’”이라고 했다. 2.75인치 로켓 9발을 동시에 쏠 수 있고, 이 9발이 다수의 표적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무기다. 한 발에 수십억원 하는 일반 미사일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다수 표적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어 국제사회에서 수조원대의 가치를 인정받는 무기다. 이 고위 관계자는 “미국도 못 하는 기술이다. 사우디에만 수조원에 수출됐고, 미국과도 1조5000억원에 수출 협상이 진행되던 무기”라고 말했다.
‘비궁’은 ADD 내에서 높은 수준의 보안이 요구되는 이른바 ‘비닉사업’으로 분류된 프로젝트다. 이 무기의 핵심 기술은 탐지추적(Seeker). 미사일 내부에 있는 추진체에 달린 탐지기가 미사일의 ‘눈’과 같은 기능을 한다. 중동 지역은 우리처럼 민가가 많은 지형이 아니라 모래밖에 없는 넓은 지형이어서 탐지 기술이 뛰어나야 하는데, ‘비궁’의 탐지추적 기술은 사막이나 해양에서 특히 유용하다는 것이 무기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리 연구진이 이 기술을 개발한 이유 역시 서북 도서 지역에서 북한의 공기정 등 다수 표적을 동시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A연구원의 UAE 취업과 기밀 유출 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1년 가까이 수사 중이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은 경찰 수사뿐 아니라 ADD 역시 감사실을 중심으로 사건의 전모에 대해 파악해 왔다. 특히 경찰 수사는 내사나 감사 수준이 아니라 청와대가 직접 지시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정부로선 창피한 상황에서 수사의 아웃풋이 없기 때문에 발표를 못 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게 실익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근시일 내 수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340일째 수사 결론 못 내고 있는 경찰
UAE로 간 ADD 연구원은 A씨 외에도 공기역학 추진체를 연구하는 4본부 연구진 4~5명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사일을 완성할 수 있을 정도의 연구진을 데리고 나간 것”이라는 것이 ADD 자체 감사 결과다. “연봉은 최소 1인당 10억원 이상, 20억원에 달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언뜻 보기에는 핵심 국방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진의 해외 업체 스카우트로 보일 수도 있지만 국방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식의 고급 인재 유출이나 스카우트는 현행법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과학연구소법은 소속 임직원이나 재직했던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국산 무기의 기술유출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야당에서는 국산 무기 기술 보호에 소홀했던 정부의 자세를 비판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2월 현 정권 핵심 인사가 UAE에 가서 무기와 관련해 ‘우리 국과연이 뛰어나니까 너네도 하나 지어줄까?’라는 식으로 생색을 엄청 냈는데, UAE와 교류가 많았던 2017년에 비해 요즘 UAE의 대우가 예전 같지 않아 의구심을 가졌다”며 “UAE 측이 관심도 별로 없고 시큰둥해서 알아봤더니 우리 연구원이 거기 가 있더라. 그래서 청와대가 수사를 지시한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도 없는 기술이라 하니까 오히려 유출을 조심했어야 하는데 정부가 호들갑을 떨어서 지금의 결과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8년 초, 송영무 국방부 장관 시기 한국은 UAE와 가까워졌다. 당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원전, 국방 분야의 협력을 위해 UAE를 수차례 오가기도 했었다. 송 전 장관 역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UAE판 ADD 설립과 관련해 UAE에 “우리 퇴직자를 이용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경찰 수사가 앞으로도 진전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강대식 의원실 관계자는 “연구원은 이미 나갔고, UAE는 그 사람들을 못 만나게 하고, 결국 우리 정부만 닭 쫓던 개 꼴이 된 것”이라며 “당사자 조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새로 온 후임들은 영문도 모른 채 경찰 조사만 받고 있다. 얼마나 황당하겠냐”고 했다. 그는 “A연구원이 떠난 이후에는 탐지기술(Seeker)과 관련해 연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걸로 안다”고도 했다. 지난해 기밀유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 ADD는 보안이 매우 강화됐다. ADD는 A연구원 사태 이후 자체 조사를 벌여 퇴직자 1078명 중 기밀유출 혐의자 46명을 적발하기도 했었다.
퇴직 후 해외 재취업을 막는 방산업계 연구진의 관리 소홀 문제도 제기된다. 현재 ADD 내부에서는 A연구원 등이 떠난 이후 업무 인수인계도 제대로 안 된 데다 후임들이 수사까지 받고 있어 내부 사기가 거의 최악의 상태에 달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강대식 의원은 “수사에 착수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며 “이 문제를 공론화해서 수사 결과를 빨리 발표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