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천안함 침몰 음모론'을 기반으로 한 87쪽 분량의 진정서가 접수된 뒤 안건명에서 ‘천안함'을 빼고 ‘○○○ 외 45명 사건’으로 바꿔 재조사를 의결했던 것으로 4일 나타났다.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에 따르면 규명위는 지난해 9월 ‘천안함 좌초설’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신상철씨의 재조사 요구 진정서를 접수했다. 신씨는 진상 규명 대상 사망인 이름에 ’2010 천안함 승조원 중 사망자'라고 썼다. 진정서엔 좌초설을 비롯, 국방부의 증거 인멸설, 북한 어뢰 설계도 조작설 등 11년 전 음모론이 그대로 반복돼 있었다.
그럼에도 규명위는 이 진정을 즉각 각하하지 않고 천안함이라는 명칭도 들어가지도 않는 안건 이름을 붙였다. 이미 11년 전 민·군 합동조사단에서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한 침몰’로 결론 내린 중차대한 사안을 일반 군 의문사와 똑같이 취급한 것이다. 규명위는 ‘○○○ 외 45명 사건에 대한 조사 개시 결정안’을 같은 해 12월 원안 의결시켰다. 정치권 일각에선 “‘제목 갈이'를 통해 재조사를 개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규명위는 천안함 건 역시 다른 안건과 같은 형식으로 이름을 붙였다는 입장이다.
일부 위원은 이 안건이 천안함 재조사와 관련한 것인 줄 모른 채 통과시켰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규명위 관계자는 “관례적으로 안건명엔 망인(亡人)의 이름만 주로 들어가는 데다가, 회의 당일 안건 수십 건을 함께 의결하느라 위원들이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을 수 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부실 심사를 했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민변 출신 인사가 위원장·상임위원으로 있는 규명위의 정치적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은 조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채익 의원은 신상철씨의 진정인 자격이 불분명한데도 규명위가 조사를 개시했던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씨는 진정서에서 “생존자들의 증언(진술서)을 검토했을 때 폭발 소견보다는 충격 소견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 또한 군 당국의 폭발 결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군 사망 사고를 ‘목격'했거나 목격한 사람에게 그 사실을 ‘직접' 전해 들은 사람’으로 한정된 진정인 자격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