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對)중국 견제를 안보 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미국이 한국과 만날 때 중국 관련 언급을 자제하는 현상이 빈번해지고 있다. 실제로 런던 G7(주요 7국)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잇따라 열린 한·미 외교장관 회담(3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5일)에선 중국 문제가 논의되지 않았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이번 G7 회의 기간 주요국 외무장관들과 만날 때마다 ‘중국'을 핵심 이슈로 부각한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미국이 반중(反中) 캠페인에 거부감이 큰 한국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에서와 달리 미·일 외교장관 회담(3일)에선 중국 문제가 강조됐다. 일본 외무성은 회담 직후 “양 장관은 동중국해·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에 강력 반대했다”며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점,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공유했다”고 밝혔다. 한·미·일 회의에서 중국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 한국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압박의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은 이번 G7 외교장관 회의 공동성명도 미국이 논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명은 동중국해·남중국해 주변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거론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 활동과 세계보건총회(WHA)에 대한 대만의 ‘의미 있는 참여’를 지지한다고 밝혀 중국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미국이 자신들의 핵심 관심사인 중국 견제 문제에 관한 논의를 ‘선진국 친목 모임’ 성격의 G7에선 적극 주도하면서 안보 공조에 특화된 한·미·일 회의에서 자제한 것은 이례적인 모습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한·미·일 회의에 할애된 시간이 많지 않았고, 최근 재검토를 마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내용을 공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했다”고 말했다. 중국 이슈가 한정된 시간 속에 의제의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뿐이지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은 아니란 취지였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난 3월 미국이 일본·한국과 연쇄적으로 개최한 외교·국방장관(2+2) 회의 때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당시 미·일 2+2 회의 공동성명에는 “중국의 기존 국제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은 미·일 동맹 및 국제사회에 정치·경제·군사·기술적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문장이 들어가는 등 중국이란 단어가 3차례 등장했다. 반면 한·미 2+2 회의 공동성명에는 중국이라는 단어 자체가 포함되지 못했다. 중국 문제에 대해 ‘한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는 방증이며, 이런 기류가 한·미·일 회의까지 반영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관심은 오는 21일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지금 외교 당국은 중국 문제가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이슈로 부각되지 않도록 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러다 자칫 한국이 미국과 안보 철학을 공유할 수 없는 나라로 인식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다음 달 영국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서도 중국에 대한 고강도 비판이 포함된 공동성명이 채택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이 회의에 초청받아 참석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