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라캐머러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 지명자가 18일(현지 시각) 미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실제 훈련이 컴퓨터 모의 훈련보다 훨씬 좋다”며 “잠재적 대북 협상 카드”라고 했다. 2018년 미·북 싱가포르 합의 이후 주요 한·미 연합 훈련이 폐지·중단된 데 대해 우려를 나타내며 향후 북한의 태도에 따라 재개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또 한·미·일 군사 협력이 중요하다는 여야 의원들의 의견에 동의하며 미 모하비 사막에서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 병력을 모아놓고 함께 훈련하는 시나리오도 소개했다.

폴 라캐머러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 지명자가 18일(현지 시각) 미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답변을 하고있다. / UPI 연합 뉴스

한·미 연합훈련 재개와 한·미·일 군사 협력 강화는 북한·중국의 거부감이 큰 사안이다. 남북 대화 재가동, 원만한 한·중 관계 유지를 외교 목표로 설정한 한국 정부로선 신임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의 발언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 인준청문회는 한반도 안보 상황과 관련해 올해 처음으로 소집된 청문회였다. 이 자리에선 한·미 연합훈련 폐지·중단에 따른 준비 태세 약화를 지적하는 민주·공화당 의원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라캐머러 지명자의 ‘실제 훈련 지지’ 발언도 ‘대규모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는 “훈련과 준비 태세는 극도로 중요하다”며 “지상군의 실제 역량이 어떤 상황인지 점검하겠다”고 했다. 다만 그는 “그것(연합 훈련)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잠재적인 협상 카드임을 안다”며 “내 임무는 (훈련 중단에 따른) 위험을 파악해 이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키리졸브(KR)·독수리(FE)·을지포커스가디언(UFG) 등 주요 한·미 연합훈련은 2018년 6월 미·북 정상회담 이후 줄줄이 폐지·중단됐다. 라캐머러 지명자의 발언을 종합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준비태세에 문제점이 발견되거나 북한이 도발할 경우 축소·중단된 훈련을 복원·재개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라캐머러 지명자는 청문회에 앞서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항공모함을 비롯해 F-22, F-35 등의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추가 배치해야 한다고도 했다.

민주·공화 의원들이 한·미 연합훈련 못지않게 강조한 이슈는 한·일 관계와 한·미·일 군사 협력이었다. 두 사안에 관한 질문만 최소 10개가 쏟아졌다. 라캐머러 지명자는 “그들(한국군과 일본 자위대)을 불러서 다자 또는 3자 훈련하는 방안을 계속 찾아야 한다”며 “전구(戰區·한반도 주변 전쟁구역)에서든 미 본토에서든 한·일과 함께 미국이 보유한 훌륭한 훈련시설에서 다자 훈련하는 기회를 모색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있는 포트 어윈 국립훈련센터(NTC)를 한·미·일 연합훈련 후보지로 꼽았다.

청문회 상황을 모니터한 우리 군·정부 관계자들은 “실기동 훈련과 한·미·일 군사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군인으로서 평소 의견을 개진한 것이지, 부임 즉시 실행에 옮기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라캐머러 지명자가 한국 부임 이후 자신의 의견을 직설적으로 개진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의 발언이 북한을 자극해 경색된 남북 관계를 더욱 냉각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1985년 미 육사(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라캐머러 지명자는 공수·특작부대를 두루 거치며 수차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장을 누빈 ‘정통 무골’ 출신이다. 미군 기관지 성조지는 “미 육군에서 전투 경험이 가장 풍부한 장교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