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중국 앞에서만 서면 이리 약할까. 여권 인사들은 미국에 할 말 하자고 얘기하고, 일본엔 소리 높여 죽창가를 부른다. 그런데 중국에는 항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이어 ‘쿼드’(미국 주도 다자안보협의체)에서도 중국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우리 정부는 쿼드가 중국이 반대하는 군사동맹체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쿼드 참여에 지나치게 주저하고 있다”고 했다. 쿼드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지향하는 다자 협의체이다.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군사 동맹의 성격보다는 안보·경제·기술·백신·기후 등 다방면의 국제 협력을 추진한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군사기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도나 일본도 거기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이 준(準)군사기구라고 반대하자 우리 정부가 거기에 끌려갔다는 것이다.
윤 전 원장은 “방글라데시는 중국이 쿼드에 들어가지 말라고 압박하니까 ‘방글라데시의 외교는 방글라데시가 결정한다’며 확실하게 거부했다”며 “그런데 우리는 왜 (눈치보며) 주저하느냐”고 했다. 최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방글라데시 외교장관을 만나 “쿼드에 참여하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경고하자 방글라데시 외교장관은 “우리 입장은 우리 국민의 이익에 따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왜 우리 대통령과 외교장관에겐 이 같은 기개가 없느냐는 것이다. 과거 사드 배치 때 정부는 2년 넘게 중국 눈치를 보다 경제 보복을 당했다. 북한 미사일로부터 우리 국민을 지키기 위해 배치한다고 했으면 끝났을 일인데 끌고 끌다가 한한령(限韓令)을 자초하고 ‘3불(不)′이라는 안보주권까지 내줬다. 쿼드도 자꾸 끌다간 ‘제2의 사태’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잖다.
윤 전 원장은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이 인도태평양을 얘기하고 있는데, 한국이 이를 피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한국의 미래 성장 동력을 생각했을 때 14억 인도 시장을 제외한 전략이 있을 수 있느냐”고 했다. 또 “우리가 쿼드에 참여한다고 중국이 경제 보복을 할 수 있겠느냐”며 “아시아의 그 많은 나라들을 중국이 다 적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했다. 또 미국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중국은 현재 경제적으로도 한국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핵심 IT 기술과 반도체·중간재·부품 등에서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특히 이 역할을 담당했던 대만이 미국 쪽으로 돌아서면서 중국은 지금 코너에 몰려있다. 윤 전 원장은 “우리나라는 미·중 사이에서 가장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며 “우리가 유리한 카드를 쓰면 되는데 여전히 중국에 저자세를 취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주도 세력의 국제관이 1980년대 냉전적 사고방식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며 “(당시 운동권은) 미국은 나쁜 제국주의 세력이고 중국은 마오쩌뚱이 이끌었던 유토피아적 세계라고 생각했었다”고 했다.
윤 전 원장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 정부가 첨단기술, 백신, 기후변화 등 쿼드의 분야별 협력에 참여할 것으로 본다”며 “미국을 비롯한 쿼드 참가국들은 ‘쿼드 플러스’에 한국과 베트남, 뉴질랜드 등이 자연스럽게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윤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해 “성과를 갖고 평가를 해야 하는데 얘기할만한 성과가 없다”면서 “역대 정부와 비교했을 때 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점수가 낮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사실상 낙제점이란 얘기다. 윤 전 원장은 “4년 간 가장 공들인 게 북핵과 남북관계인데 북핵은 남한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배치할 상황이 됐고 남북관계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최악”이라고 했다. 또 “한미동맹은 애매해지고 한일관계는 역대 최악이고 한중관계는 사드 보복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갖고 시도를 했지만 결과는 없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앞으로 트럼프 초창기 때처럼 바이든 행정부의 눈길을 끌고 미북 협상 재개를 위해 핵·미사일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윤 전 원장은 “트럼프 때처럼 미사일 사거리를 늘려 도발수위를 높이다 연말쯤 장거리 미사일을 쏠 가능성이 있다”며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둔 시진핑 주석이 미북 간 중재에 나서도록 하는 시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2017년 대북 제재 결의안은 북한이 ICBM이나 핵실험을 하면 자동적으로 초강력 제재를 의무적으로 부과토록 하고 있다. 코로나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과연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ICBM이나 핵실험을 하겠느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