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국방장관을 비롯한 한·미의 대표적 안보 전문가들이 30일 온·오프라인으로 모여 미중 갈등이 심화하고 북한의 핵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제12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를 계기로 미 브루킹스연구소와 한국국가전략연구원(KRINS)이 마련한 세션에서 “미·중 갈등은 이제 시작이고, 북한은 중국을 안전판 삼아 핵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한미동맹 강화와 대북 제재의 철저한 이행’이라는 기본에 충실할 것을 주문했다.
국방부 장관을 지낸 한민구 한국국가전략연구원(KRINS) 원장은 기조연설에서 “북한과 중국은 점점 더 밀착해가며 한국과 미국에 전략적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며 “지난 수년간 (트럼프 정부의) 미국 제일주의로 인해 한미 동맹 관계가 손상된 측면이 있지만, 한미동맹을 다시 강화하고 경제 협력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윤 선 스팀슨센터 동아시아 국장은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나갈 것”이라며 “미·중 갈등은 시작에 불과하며, 두 강대국의 경쟁이 심화하면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 국면에서 북한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면서, 한국에는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편에 설지 양자택일을 요구할 것”이라며 “한국은 이 상황에서 얻어낼 수 있는 현실적이고 명확한 기대치를 설정해 전략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어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중국의 여러 대북 제재 위반 행위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중국의 대만 등 남중국해 정책에는 비판적 입장을 표하면서도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명확한 비판을 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기 위해 선제적으로 양보를 하고 지원을 약속해선 안 된다”며 “한·미·일 공조 강화로 대북 제재 위반 행위에 더욱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국무부 비확산·군축 특보를 지낸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도 북한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인혼 연구원은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 개발 의지를 완전히 근절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조건을 제시하고 보상을 약속하는 식의 협상을 한다면, 북한은 말도 안되는 보상을 요구하면서 어떤 조건도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은 한국 등 동맹국과의 협의를 통해 억제를 통한 전략적 압박을 북한에 가해야 한다”고 했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국정원 1차장을 지낸 김숙 전 유엔 대사는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재검토 작업을 마친 대북 정책에 대해 “한국 국민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의 우선순위를 끌어올린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은 아무것도 공개되지 않았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회담은 화기애애했고 강력한 내용의 공동성명이 발표됐지만 많은 분석가들이 ‘한·미가 동상이몽에 빠져있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을 지낸 류제승 KRINS 부원장(예비역 육군 중장)은 한미 연합 방위 태세의 강화를 강조했다. 류 부원장은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지만, 국지적 도발을 일으킨 뒤 한국이 응전하려 할 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미동맹이 확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확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북한에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의 위협을 평가할 때 북한의 의도가 아니라 능력에 초점을 둬야 한다”며 “현존하는 위협, 잠재적 위협을 판단할 때 정치에 의한 왜곡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평화조약으로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됐다”며 “미·중 갈등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레이스인데, 1~2년 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국이 가진 카드를 초기에 다 소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희망적 사고”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