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7월 한국 첫 휴전회담 대표로 나선 백선엽 1군단장이 판문점 캠프를 찾아온 요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 무렵 휴전에 반대한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회담 대표로 나선 백 소장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밀지를 내렸다. [고 백선엽 장군 소장 앨범]

고 백선엽 예비역 대장(1920~2020)은 그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일선에 섰던 미군들로부터 ‘진정한 전쟁 영웅’이라는 평가를 더 받는다. 그는 다부동 전투로 대한민국을 바람 앞 등불의 위기에서 구했고, 평양 최초 점령, 중공군 참전 직후 성공적인 후퇴, 1⋅4후퇴로 뺏긴 서울 재탈환, 중공군 1951년 춘계 공세 방어, 동부 휴전선 북상 등의 숱한 작전을 지휘한 명장으로 유명하다.

6.25전쟁의 영웅으로 불리는 고 백선엽 예비역 대장(1920~2020)의 미공개 사진 [고 백선엽 장군 소장 앨범]

그 뒤 미군과의 물 샐 틈 없는 협력으로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하던 빨치산 토벌, 국군 2군단 재창설로 시도한 한국군 현대화, 휴전 직후 병력 40만명의 1야전군 창설과 휴전선 단독 방어 능력 확보 등 수많은 전공과 수훈을 세웠다.

한국군 2군단 재창설은 포병전력의 획기적 현대화의 첫 걸음을 뗀 작업이다. 이 때 무기 현대화와 함께 고급 포병장교를 대거 육성했다. 2군단 재창설 직후로 추정하는 사진 속 뒷줄 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붉은선 안)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이 무렵 병과를 포병병과로 옮겨 곧 장군으로 진급한다. 박 대통령은 해방 직후 남로당 군사책으로 활동했다가 1948년 숙군작업에 걸려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당시 숙군 책임자였던 백선엽 정보국장(앞줄 오른쪽 3번째)에 의해 사형 집행 10여일 전 극적으로 구명됐다. 여러 모로 백선엽 장군과는 기묘한 인연을 맺은 사이다. [고 백선엽 장군 소장 앨범]

7월 10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본지는 고 백선엽 장군이 소장하던 전쟁 기간 앨범을 받아 그 중에서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면모를 담은 사진들을 공개한다. 장군으로 진급하기 전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이나 휴전 회담 때 이기붕 당시 국방장관이 와서 밀지를 전달하는 듯한 모습, 밴 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이 아들 실종 소식을 알리는 장면을 비롯해 6·25 전쟁 전장을 누비는 백 장군 활동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