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해역에서 한국 선박 보호 임무를 수행하던 해군 청해부대 34진(문무대왕함·4400t급)에서 장병 6명이 코로나에 확진됐고 80여 명은 의심 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15일 나타났다. 문무대왕함에는 300여 명의 승조원이 탑승하고 있다. 밀폐돼 있는 데다 환기 시설이 모두 연결돼 있는 함정 특성상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질 가능성도 있다. 부대원 중 백신 접종자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는 이 같은 우려에 작전을 사실상 중단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공중 급유 수송기를 급파해 방역 인력, 의료 인력, 방역·치료 장비, 물품을 최대한 신속하게 현지에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청해부대 34진은 지난 2월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에 파병됐다. 다음 달 초 임무 교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2일 처음으로 감기 증상 환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군은 코로나 검사를 실시하지 않고 감기약만 줬다. 10일엔 다수 장병이 감기 증세를 호소해 40여 명에 대해 정확도가 떨어지는 간이 검사를 했는데 모두 음성이었다. 13일에야 인접국에 증상자 6명을 샘플로 유전자 증폭(PCR) 검사를 의뢰했는데, 결과는 전원 양성이었다.
간부 1명은 중증 코로나 증상인 폐렴을 호소해 지난 14일 현지 병원으로 후송됐다. 정부 관계자는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해당 간부의 코로나 확진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합참은 “탑승자 300여 명 중 80여 명이 증상을 보여 동일 집단 격리하고 유전자 증폭(PCR) 검사를 실시했다”고 했다. 검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상당수가 확진될 가능성이 있다. 군은 나머지 230여 명 장병에 대해서도 1~2일 내 전원 코로나 검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군이 감기 증상자 최초 발견부터 열흘 넘게 시간을 지체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군은 “확진자와 유증상자는 함정 내 별도 시설에 격리했다”고 밝혔지만, 함정 여건상 ‘1인 1실’ 격리는 불가능해 일반 선실 등에 동일 집단 격리를 한 수준이다. 유증상자들이 검사를 받지 않은 채 한데 모여있는 상태라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군 안팎에선 문무대왕함이 대규모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던 일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나 미 핵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의 악몽을 재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지난해 1월 홍콩에서 하선한 승객의 코로나 확진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일본 정부는 요코하마에 입항한 선박 승객 하선을 금지시켰다. 이후 한 달여간 3700여 명 승객 중 확진자 700여 명이 발생했고 6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3월엔 미 핵항공모함 루스벨트함에서 확진자 1100여명이 나왔고 1명이 숨졌다.
문무대왕함은 현재 아프리카 해역에서 인근 항구로 이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박하더라도 코로나 감염 우려 때문에 우리 장병이 상륙해 현지 병원에서 치료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합참은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해부대 코로나 확진 보고를 받은 뒤 “현지 치료 여건이 여의치 않을 경우 환자를 신속하게 국내에 후송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창궐하는데도 위험 지역에 파병되는 장병 안전을 군이 소홀히 여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군은 “지난 2월 청해부대 34진을 파병하기 전 부대원 전원을 대상으로 PCR 검사를 한 결과 음성이 나왔었다”고 했다. 외부와 격리된 생활을 하는 함정 특성상 부대원 전원이 코로나 음성이기 때문에 안심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지 항구에 정박해 물자를 보급받는 과정에서 바이러스 유입 가능성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문무대왕함에선 지난달 28일부터 1일까지 기항지에 접안한 뒤 감기 증상 환자가 발생했다.
군은 지난 4월부터 장병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청해부대에 대한 백신 수송은 검토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한국이 후진국도 아닌데 파병 부대 제일선 장병들을 위한 접종을 계획하지 않았다는 건 군 지휘부의 직무 유기”라고 했다. 군 관계자는 “백신 수송이나 접종 후 부작용 대처 계획 등을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국방부는 이날 외국 파병 장병 1300여 명 중 960여 명(72.6%)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완료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번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청해부대 34진과 다음 달 교대를 앞둔 35진도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재외공관도 188곳 중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90여곳에서만 백신 접종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에 따르면 작년부터 최근까지 재외공관 한국인 직원 150명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