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재건 사업을 도왔다는 이유로 탈레반의 보복 위기에 처했던 현지인 391명이 26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25일 “우리와 함께 일한 동료들이 처한 심각한 상황에 대한 도의적 책임, 인권 선진국으로서의 국제적 위상 그리고 유사한 입장에 처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을 다른 나라들도 대거 국내 이송한다는 점 등을 감안해 이들의 국내 수용 방침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보고받고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또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국내로 이송되는 아프가니스탄 국적자들은 현지 한국 대사관,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 지방재건팀(PRT), 바그람 한국병원·직업훈련원에서 근무한 사람과 그 가족들이다. 최 차관은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악화하면서 우리 대사관에 신변안전 문제를 호소하며 한국행 지원을 요청해 왔다”고 했다. 공덕수 전 바그람 한국직업훈련원장은 “이들이 근무했던 바그람 한국병원과 직업훈련원을 탈레반이 폭파했다. 이들도 (현지에 남는다면) 처형될 게 확실하다”고 했다.
정부는 당초 외국의 민간 전세기를 이용해 이들을 국내로 이송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15일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되며 민항기 이착륙이 불가능해지는 등 현지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미라클’이란 작전명이 붙은 이번 작전은 지난 23일 오전 1시 공군 수송기 3대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를 향해 이륙하는 것으로 개시됐다. 투입된 수송기는 300명을 태울 수 있는 공중급유기 KC-330 1대, 120~130명을 태울 수 있는 전술수송기 C-130J 2대였다. 군 관계자는 “(대공포 등) 위협이 있을 수 있어 전술비행 등 대응 능력을 갖춘 C-130J를 투입했다”고 했다.
이번 작전은 카불 공항에 집결한 이송 대상자들을 일단 안전이 확보된 이슬라마바드로 순차 이송한 뒤 이들을 한데 모아 인천국제공항으로 데려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C-130J 2대가 이슬라마바드와 카불을 오가는 셔틀 역할을 하고, KC-330은 이슬라마바드에서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다.
최대 난관은 이송 대상자들을 공항에 집결시키는 것이었다. 탈레반의 감시, 밀려드는 피란민 행렬로 공항 접근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제시한 ‘버스 모델’이 활용됐다. 미국이 현지 버스회사와 계약을 맺고 한국 등 우방국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한국행 의사를 밝힌 427명 가운데 잔류 또는 제3국행을 택한 36명을 제외하고 391명 전원이 24~25일 공항 진입에 성공했다. 각국의 버스 쟁탈전이 치열한 상황에서 버스를 확보하는 역할은 주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 직원 4명이 맡았다. 카불 함락 직후 카타르로 탈출한 지 1주일여 만에 이번 작전을 위해 사지(死地)로 돌아온 것이다.
이날 밤 아프가니스탄 조력자 391명을 태우고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이륙한 공군 수송기는 26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논스톱 운항이 가능한 KC-330은 약 11시간, 중간에 한 차례 급유가 필요한 C-130J는 약 17시간이 소요된다. 391명 가운데 이달 태어난 신생아 3명을 비롯해 5세 미만 영·유아가 100명에 달하는 점을 고려해 분유와 젖병도 수송기 내에 마련됐다.
외교부는 이들이 난민 자격이 아니라 ‘특별공로자’로서 입국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 소식통은 “난민 수용에 부정적인 국내 여론을 의식한 것일 뿐 실제로는 난민에 준하는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우선 이들에게 단기 비자를 발급한 뒤 체류를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