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인 협력자와 그 가족 378명이 한국군 수송기를 타고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단체 탈레반 위협을 피해 한국에 도착했다. 정부가 분쟁 지역의 외국인을 이처럼 대규모로 국내 이송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을 태운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30은 26일 오후 4시24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 시각으로 새벽 4시53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출발해 약 11시간을 비행했다. 전체 입국 대상인 391명 가운데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남아있는 13명은 다른 한국군 수송기를 타고 조만간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지난 수년간 아프가니스탄 카불 주재 한국 대사관,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바그람 한국병원, 바그람 한국직업훈련원, 차리카 한국 지방재건팀 등에서 의사와 간호사, 정보기술(IT) 전문가, 통역, 강사 등으로 일한 전문인력과 그들의 가족이다. 가족 중에는 10세 이하 어린이와 노약자가 상당수 포함됐다.
이들은 공항 내 별도 장소에서 코로나 유전자증폭(PCR) 검사 등 방역 절차를 거친 뒤 공항 근처 임시시설에서 대기하다 음성이 확인되면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인재개발원에서 14일간 격리 생활을 하면서 정착 교육을 받다가 6∼8주 뒤 정부가 마련한 다른 시설로 옮겨질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단기방문(C-3) 도착비자 발급 뒤 곧이어 장기체류가 허용되는 체류자격(F-1)을 부여했다. 인재개발원에서 임시생활 단계를 마치면 취업이 자유로운 거주(F-2) 비자가 발급된다.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공세가 거세진 8월 초부터 민간항공기를 이용해 한국을 도운 아프간인들의 국내 이송을 준비했지만, 상황이 급박해지자 지난 23일 한국군 수송기 3대를 현지에 보냈다.
이와 관련 김부겸 국무총리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아프가니스탄 직원 등 378명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면서 “결코 쉽지 않았던 목숨을 건 긴박한 여정이었다”고 했다.
김 총리는 “오늘 입국한 분들은 길게는 7-8년 이상 우리 대사관과 코이카, 한국병원 등에서 함께 일해온 동료들이고 그의 가족들”이라며 “이 중 절반 가량이 10세 이하의 어린아이들로 도움이 절실한 약자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와 일했다는 이유로 생명을 위협받는 동료의 구조요청을 외면할 수는 없다”면서 “위험에 처한 동료를 돕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가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김 총리는 “정부는 국제사회의 일원이자 선진국으로서의 위상, 동료들이 처한 심각한 상황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감안해 이분들의 국내 이송을 결정했다”며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임시체류를 수용해 주신 진천군민들에게 특별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이어 “작년 초, 우한 교민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신 것에 이어 이번에도 정부가 큰 신세를 지게 됐다”며 “갑작스러운 상황에 진천군민들이나 국민께서 불안해하실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처음 채용 과정에서 이미 신원 조회를 거쳤지만, 우방국과 함께 현지에서 다시 철저히 신원을 확인했다. 방역과 보안을 더욱 빈틈없이 관리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