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서 직업 외교관들을 제치고 대사(大使)가 된 이른바 ‘캠·코·더’(문재인 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출신) 특임 공관장들의 비공개 외교 활동이 극히 저조한 것으로 1일 나타났다. 공식 행사 참석 같은 의례적 활동을 제외하고, 주재국 정·관계 핵심 인사들과의 교류나 고급 정보 수집 등의 실질적 외교 노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임 후 9개월 동안 비공개 외교 활동이 1건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다. 이를 지적받은 공관들은 대부분 “코로나 사태로 인해 대면 외교에 제약이 크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님을 감안하더라도 이들의 외교 활동 실적은 인접 지역 공관장이나 전임자들과 비교해 볼 때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실이 전체 164개 공관 가운데 대륙별·규모별로 주요 공관 39곳을 추려 ‘2020~2021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 집행현황’을 분석한 결과 주재국 인사 접촉 실적이 저조한 공관은 8곳으로 집계됐고 이 가운데 5곳이 이른바 캠코더 공관이었다.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란 보안 유지 필요성이 있는 주재국 주요 인사와의 비공개 외교 활동에 법인카드로 지출하는 비용이다. 이를 분석하면 네트워크 구축, 정보 수집 등 국익과 직결되는 실질적 외교 활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파악된다.

/자료=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실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으로 현 정부 초대 청와대 인사수석을 지낸 조현옥 주독일대사의 경우 작년 11월 부임 이후 지난 7월까지 주재국 요인 접촉 실적이 1건이었다. 조 대사와 같은 시기 부임한 직업 외교관 출신 인접국 대사는 30건 넘는 활발한 외교 활동을 했다. 조 대사의 전임자인 정범구 전 대사도 역시 코로나 사태가 진행 중이던 작년 1월부터 11월까지 9건의 주재국 접촉 활동이 있었다. 조 대사는 인사수석 시절 각종 인사·검증 실패와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제 등으로 논란을 빚다가 2019년 5월 물러났지만 1년 반 만에 대사에 임명됐다.

문체부 차관 출신의 노태강 주스위스 대사도 작년 11월 부임 이후 지난 7월까지 주재국 인사 접촉이 1건이었다. 그나마도 보안을 요하는 정부 핵심 인사가 아니라 모 협회 인사였다. 노 대사의 전임자는 코로나 극성기였던 작년 1~11월 두 자릿수의 접촉 실적이 있다. 외교 소식통은 “지금 스위스 대사관에서는 공관 차석인 공사참사관이 대외 접촉 활동을 전담하는 상황이라서 ‘누가 대사인지 헷갈린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노 대사는 문체부 체육국장이었던 2013년 승마협회 감사 보고서에 최순실씨 측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담았다가 ‘참 나쁜 사람’으로 지목당하고 한직으로 좌천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문체부 제2 차관으로 재기했다.

현 정부 요직을 장악한 참여연대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주중대사의 경우 작년 1월 이후 지난 7월까지 주재국 요인 접촉 실적이 16건으로 한 달에 1건 수준이었다. 그중 핵심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정부 인사 접촉은 2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12건은 베이징 주재 타국 대사 접촉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동문인 장경룡 주캐나다 대사는 작년 6월 부임 이후 1년여 동안 주재국 인사 접촉이 6건으로 집계됐다. 장 대사는 경희대 정치학과 재학 당시 같은 학교 법대생이던 문 대통령과 함께 총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했다. 두 사람은 1975년 유신 독재 반대 집회를 주도하다 구속돼 같이 제적 처분을 받았다. 광주여대 교수를 지낸 장 대사는 문 대통령이 집권한 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통의 국제협력분과 위원장에 올랐다. 17·18대 민주당 의원을 지낸 최규식 전 주헝가리 대사도 작년 1월부터 11일 이임할 때까지 접촉 실적이 6건이었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

그동안 외교가에선 “언어나 현지 사정, 외교 관례에 익숙하지 않은 캠코더 공관장들의 외교 활동에 제약이 많을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이것이 외교부 공식 자료를 통해 입증된 것은 처음이다. 전문성 검증 없이 보은 인사로 주요국에 나간 ‘낙하산 공관장’들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시간만 때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태규 의원은 “국익과 나라의 운명이 걸린 외교 최일선에서 치열하게 일해야 할 재외 공관장이 정권의 캠코더 정실인사로 전락하면서 외교 공백을 자초하고 있다”며 “주요 공관장들이 검증도 안 된 자기편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국익에 손실을 초래하는 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 지출 내역이 개별 공관의 외교 활동 전부를 보여주는 건 아니다. 주재국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우리 필요에 의한 만남이냐, 상대방이 원하는 만남이냐의 문제”라며 “당연히 전자(前者)가 우리 국익에 부합하고, 이 때문에 외교부가 그 집행 실적을 인사고과와 공관 평가에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태규 의원실 관계자는 “접촉 실적이 저조한 대사들의 경우 소속 공관 전체의 접촉 실적도 형편없는 경향을 보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