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6일(현지 시각) 문재인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종전선언에 대해 “우리(한·미)는 정확한 순서와 시기, 혹은 조건 등에서 다소 시각차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종전선언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핵심적인 (대북) 전략 구상에 있어선 근본적으로 의견이 일치한다”면서도 이같이 밝혔다.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을 위한 미국 설득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미국의 안보 사령탑이 한·미 간에 이견이 있음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한 것이다. 종전선언을 고리로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멈춰선 남북, 북·미 대화를 재가동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한국 측은 종전선언이 법적 구속력 없는 정치적 선언이라 주장하며 이를 비핵화 협상의 입구로 활용하자는 논리로 전방위 대미 설득 외교를 하고 있다. 설리번 보좌관도 지난 12일 미국을 찾은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이 같은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미국은 종전선언이 정전체제를 종료하는 평화협정의 첫 페이지란 점에서 법적·정치적 구속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섣부른 종전선언이 주한미군과 한미연합사, 유엔사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쳐 유사시 북의 남침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종전선언이 한·미 간의 화두로 처음 떠오른 2007년부터 줄곧 ‘종전선언을 위해서는 북한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비핵화가 종전선언의 전제 조건이고, ‘선(先) 비핵화, 후(後) 종전선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일단 북한이 협상장에 조건 없이 나와야 하고,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면 그 과정에서 종전선언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고 했다. 조건 없이 종전선언부터 하고 비핵화 대화를 시작하자는 한국의 입장과는 정반대다. 설리번 보좌관이 언급한 ‘순서·시기·조건상의 이견’은 바로 이런 상황을 가리킨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27일 “이견이 있어도 되도록 내색하지 않는 게 외교 관례”라며 “설리번의 발언은 양측의 입장 차가 현격할 뿐 아니라, 한국의 집요한 설득에 대한 부담과 피로감이 상당하단 얘기”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 이후 한 달여 동안 외교안보 부처의 고위 당국자들이 미국의 카운터파트와 접촉해 종전선언을 논의한 횟수만 10차례가 넘는다.
미 측의 공개적인 이견 표명에도 한국 정부는 계속 미국을 설득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앞으로도 긴밀한 공조하에 종전선언에 대해 진지하고 심도 있는 협의를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브리핑에서 설리번 보좌관은 대북 정책과 관련, “외교는 실질적으로 억지력과 병행돼야 한다”는 말도 했다. 미 측이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언급하는 ‘억지력’(deterrence)은 북한의 도발·남침 의지를 꺾는 강력한 한미 연합 군사 대비 태세를 뜻한다. 예비역 장성 A씨는 “북한의 반발에 한미 연합 훈련을 줄줄이 축소·폐지하고, 북한의 도발을 묵인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우려·불만을 드러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대북(對北) 제재가 유지돼야 한다는 뜻을 강조한 것으로도 해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