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에 의한 성추행과 2차 가해에 시달리다가 극단 선택을 했던 공군 고(故) 이예람 중사가 사망하기 열흘 전, 또다른 공군 여성 하사도 비슷한 피해를 당한 뒤 극단 선택을 했던 사실이 뒤늦게 나타났다. 그런데도 공군본부 법무실 등 수사 당국은 당초 ‘스트레스성 극단 선택’으로 사건을 마무리했고, 사건 발생 5개월이 경과한 지난달에야 피해자보다 28살 많은 가해 남성 준위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이 중사 사건에 전국민적 공분이 일자 문재인 대통령이 ‘격노’하고, 서욱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하던 시점에 공군 지휘부와 법무실은 유사 사건을 은폐·축소하기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는 15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5월 11일 공군 제8전투비행단 소속 여군 A 하사가 영외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실을 공개했다. 센터는 공군 수사 당국이 A 하사 죽음을 지난 6월 10일 ‘스트레스성 극단 선택’으로 종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A 하사보다 28살 많은 상급자인 이모 준위의 강제추행 혐의가 이미 드러났는데도 군 당국이 이를 은폐했다는 것이 센터 주장이다.
군 수사 당국은 이 준위가 A 하사 숙소와 그 근처를 7차례 방문하고 업무와 상관없는 메시지와 전화 연락을 한 사실을 확보했다고 센터는 밝혔다. 또 이 준위는 지난 3~4월 부대 상황실에서 A 하사 볼을 잡아 당기는 등 두 차례 강제 추행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A 하사가 극단 선택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이 준위였는데도 군 당국은 이를 수사 결과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센터는 밝혔다.
A 하사 사망 직후 이 준위가 여러 차례 수상한 행적을 보였는데도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센터는 지적했다. 이 준위가 5월 9일 자신의 차에서 20분간 A 하사를 만나는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기록을 삭제했고, A 하사가 숨진 당일에는 출근 시간 30분 전부터 23차례 전화를 걸고 급기야 주임원사와 함께 A 원사 숙소에 찾아가 방범창을 뜯고 숙소에 들어갔었다는 것이다.
공군 검찰이 이 준위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한 시점은 A 하사가 숨지고 5개월이 지난 지난달 14일이었다. 군 검찰은 이에 대해 “유족이 수사를 요청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를 조사하다 보니 강제추행 소지가 있어 입건했다”고 밝혔다고 센터는 전했다. 이에 대해 센터는 “강제추행 사실을 수사 과정에서 인지했음을 숨기고 주거침입 등만 기소했다가 뒤늦게 슬그머니 강제추행 건을 입건한 것”이라며 “이 중사 사건에서 보여준 부실한 초동 수사와 매우 유사하다”고 했다.
이어 “이 중사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와 합동위 활동이 모두 종결된 후 국민의 관심이 군 성폭력 이슈에서 멀어질 때쯤, 사망과 강제추행이 연결돼있다는 것이 티나지 않도록 별도 기소한 것”이라고 했다.
공군은 이에 대해 “사망 사건 발생 이후 강제추행 등 자살 원인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했다”며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순직이 충분히 인정되어 관련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고 했다. 이어 “10월 14일 기소하여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비리 백화점 공군 법무실 해체해야”
그러나 공군은 뒤늦은 기소 시점 등 추가적인 의문에 대해서는 “재판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종결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제한된다”고 했다. 공군 법무실에선 최근 부실 수사, 기강 해이, 수당 횡령, 기밀 유출, 성희롱 논란 등이 속출, ‘비리 백화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과 군 안팎에선 “공군 법무실을 해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익수 법무실장은 대령 시절이던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수사 지시를 했던 ‘기무사 계엄령 문건’ 특별수사단장을 맡았다. 2년 뒤 공군 법무관 출신으로는 사상 첫 장군으로 진급했다. 전 실장 누나는 지난해 11월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장관 몫으로 유일하게 공수처장 후보로 추천한 판사 출신 전현정 변호사다. 전 실장은 추 전 장관과 같은 한양대 법대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