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6일(현지 시각)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과 양자 회담을 가졌다.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종전 선언과 관련, 외교부는 회담 직후 “각 급에서 소통과 공조가 빈틈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평가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미국 측 보도 자료엔 종전 선언이 언급되지 않았다. 종전 선언을 둘러싼 양측의 인식차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종전 선언을 공개 제안했을 때부터 바이든 행정부 주변에선 회의적 기류가 감지됐다. 미국의 안보 사령탑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달 26일 “종전 선언 순서와 시기, 혹은 조건 등에서 (한국 측과) 다소 시각차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미 측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됐다.
외교부는 한미 간 이견설을 강하게 부인해 왔다. 정의용 외교장관은 “한미 간에 상당히 조율이 끝났다”고 했고, 최 차관도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종전 선언 제안 이후 두 달간 한미가 10차례 이상 고위급 회담을 하면서 미 측이 서면 자료에서 종전 선언을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날 한·미 차관 회담 직후에도 국무부는 보도 자료에서 ‘인도 태평양’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 ‘탄력적 공급망 보장’ 등 중국을 겨냥한 용어만 나열하고 종전 선언은 거론하지 않았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최우선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미국이 한·미·일 협의회를 쉬지 않고 소집하는 것도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한국의 공세적인 종전 선언 추진은 미국 기류와는 동떨어졌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의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등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선수단은 파견하되 정부 대표단은 파견하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 보도가 현실화할 경우 베이징올림픽을 고리로 종전 선언을 비롯해 남·북·미 대화 국면을 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 대북 정책 구상은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