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軍)은 현 정부 출범 후 최전방 경계가 귀순·월북으로 수차례 뚫리는 동안 “작전 지역이 넓어서 감시에 한계가 있었다” “인공지능(AI) 등 과학화 감시 체계를 보강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그러나 지난 1일 22사단 ‘새해 월북’ 사건은 폐쇄회로(CC)TV와 동작 감지 센서, 열상감시장비(TOD) 등으로 최소 4차례 포착했음에도 군은 3시간 이상 속수무책, 우왕좌왕이었다. 군 지휘부가 ‘평화’를 강조하는 동안 경계 작전에 임하는 기초 군기(軍紀)가 허물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2월 22사단 ‘헤엄 귀순’ 당시 “22사단은 철책과 해안을 동시에 경계해야 하고 작전 요소나 자연 환경 등 어려움이 많은 부대”라며 “해당 사단에 대한 정밀 진단을 이번 기회에 하겠다”고 했다. 국방부는 2개월 뒤 서 장관 주관으로 ‘국방개혁 2.0 추진점검회의’를 열고 “22사단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AI 기반으로 개선하겠다”며 “데이터 분석과 학습으로 틀린 경보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감시의 정확성을 높이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불과 8개월 뒤 같은 부대에서 또 경계가 뚫리자 군 안팎에선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1일 월책 사건 당시 CCTV가 월북자를 최초 포착한 시각은 오후 6시 40분으로 경계가 취약한 심야·새벽이 아니었다. 철책 센서는 월북자 동작을 감지하고 경보를 울렸다. 기계가 이처럼 정상 작동했지만 현장에 출동한 초동 부대는 철책이 훼손된 흔적이 없다는 이유로 “이상이 없다”고 보고했다. 당시 현장엔 눈이 내려 있어 발자국 등을 세밀하게 추적·관찰해야 함에도 형식적인 수색에 그쳤다는 것이다.
TOD가 월북자를 3차 포착하는 오후 9시 20분까지 대대·여단·사단·군단 지휘 계통의 누구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군 관계자는 “중대장이 CCTV에서 월북자를 발견 못하자 자체 종결한 것으로 안다”며 “바람, 야생동물 등으로 인한 오작동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2월 ‘헤엄 귀순’ 당시에도 경보음이 2번 울리고 CCTV가 귀순자를 10번 포착했지만 놓친 것과 판박이다. 이후 “오작동을 줄이겠다”고 대대적인 보강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현장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합참 관계자는 “미흡한 점이 있었음을 인정한다”고 했다.
지난해 군이 ‘헤엄 귀순’ 대책으로 발표한 ‘AI 경계 시스템’은 현재 기초 성능 실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 관계자는 해당 지역에 AI 시스템을 보강했느냐는 질문에 “아직 확인을 못 했다”고 했다. 기초 군기를 다잡기보다 실효성 없는 대책을 보여주기식으로 포장해 발표하는 데만 급급했던 군이 초래한 인재(人災)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헤엄 귀순 때도 “기계 탓 하지 말라”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군이 이를 외면한 결과라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아무리 첨단 기계를 갖다 놔도 사람이 제대로 쓰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며 “이번엔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1일 오전 신년 지휘비행을 하며 한반도 전역의 대비 태세를 점검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서 장관은 육군 GOP 대대장 등 전군 지휘관 7명과 통화하며 “지난해 우리 군은 강한 힘으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 노력을 뒷받침해왔다”며 “새해에도 위국헌신의 자세로 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수시간 뒤 최전방 경계가 ‘새해 월북’으로 뚫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