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의 외교·안보 브레인들이 미·중 전략 갈등 국면에서 원칙 없이 흔들리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들은 13일 미 브루킹스연구소, 한국국가전략연구원(KRINS),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한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모호한 태도가 한·미 간의 불협화음 증폭으로 이어지며 한국이 자칫 ‘이류 동맹’ ‘낙오자’로 전락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날 서욱 국방부 장관은 축사에서 “미래 한·미 동맹은 한국군 주도의 연합방위체제를 기반으로 한반도뿐만 아니라 역내 평화·안정을 위한 핵심축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어진 세미나에서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 석좌는 “워싱턴에는 한국이 보다 솔직하게 (대중국) 전략 전선에 동참했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며 “하지만 한·미 동맹은 다자적 안보 체제에 합류한 미국의 다른 동맹들과 달리 주로 양자 관계에 국한돼 있다”고 했다. 한국이 오커스(미국·호주·영국),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등 미국의 대중 견제용 협력체에 동참하길 꺼리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이어 “한·미 동맹 이면엔 잠재적인 정책상의 불협화음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라며 “역내 플레이어들이 보기에 한·미 동맹은 이류 동맹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자유 수호와 국제법 준수라는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하나로 뭉친 아시아 민주 국가들의 행보에 동참하길 주저해왔다”며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보장을 비롯해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더 큰 역할을 해주기를 계속해서 촉구해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 외교비서관을 지낸 장호진 한국해양대 석좌교수는 중국의 경제적 위상, 대북 영향력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며 “착시효과들을 걷어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제는 미국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 민주 진영 국가들 간의 배타적인 첨단기술 협력망 구성에 나섰다”며 “여기서 제외될 경우 경제·과학·기술적 손실이 막대하고 불가피하다”고 했다.
국방장관을 지낸 한민구 KRINS 원장도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다가 미국과의 협력 기회를 놓치면 중국에 첨단기술을 따라잡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미·중이 충돌할 경우 한·미가 어떤 절차로 어느 범위까지 협력할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패트리샤 김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국 지역협력의 무게중심이 쿼드로 이동하면서 한국은 낙오할 위험이 있다”며 “하지만 한·미·일 간 실질적 협력 분야는 쿼드의 의제 목록과 일치하는 게 많다”고 했다. 한국이 쿼드에 들어가지 않을 경우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는 차선책을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역점 추진 중인 종전선언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국무부 군축 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는 종전선언의 가치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이라며 “다만 동맹국 지도자 존중 차원에서 선언의 내용과 형식을 논의했을 따름”이라고 했다. 이어 “바이든 행정부는 종전선언이 단순히 (북한과의) 대화 재개용으로 마련되는 것이라면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국방연구원의 이호령 책임연구위원도 “시간에 쫓길수록 종전선언의 가치와 상징성은 가벼워지고, 여론 분열과 갈등만 증폭될 수 있다”며 “종전선언 이전에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진행돼야 하고 핵 신고 등 실질적인 비핵화 이행조치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했다.
김숙 전 주유엔 대사는 최근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후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각 부처가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과 관련, “국민 불안은 북한의 도발 때문인데 부처들에 무슨 조치를 요구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북한의 도발을 엄중 규탄하고 대응 조치를 한·미, 한·미·일 공조하에 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