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정상은 지난 21일(미국 현지 시각) 회담을 갖고 올 상반기 일본에서 미·일·인도·호주 4국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또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홍콩과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공유했다고 밝혔다. 밤 10시쯤 시작된 정상회담은 예정 시간을 20분 넘겨 약 1시간 20분 동안 진행됐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름인 ‘조’ ‘후미오’로 불러 친밀감을 과시했다. 양국은 최근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도 공동 규탄 성명을 내는 등 대북 정책과 대중 견제 노선에서 갈수록 밀착하는 모양새다.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상황실에서 화상을 통해 기시다 후미오(화면)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최근 북한의 잇따른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을 규탄하며 양국은 물론 한국과도 긴밀히 조율하기로 했다. [미 백악관 제공]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 등 임기 말 ‘남북 평화 이벤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서 미국 주도의 대북·중 압박 노선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워싱턴에는 과거 미국이 동북아 정책을 투사하는 주요 도구로 활용했던 한·미·일 3각 공조가 한국의 비협조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자 쿼드·오커스 같은 새로운 안보협력체에 의존하게 됐다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한·미·일 공조가 삐걱대는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방일 소식이 전해진 데 주목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5월 취임 후 첫 번째와 두 번째 정상회담 상대로 스가 요시히데 당시 일본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을 택했다. 일본과는 약 1년 만의 정상회담에 합의했지만 한국과의 정상회담은 아직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자칫 바이든 대통령이 도쿄만 찾고 서울은 패싱하는 외교 참사가 우려된다”며 “대선을 앞둔 한국의 정치 상황이 유동적임을 감안하더라도 되도록 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쿼드 정상회의는 중국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안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과거 미·중 정상회담에서 ‘쿼드 정상회담은 개최하지 말아 달라’고 발언했던 일화를 소개했다고 한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일본 주재 중국대사관은 “(미·일) 양국이 냉전적 사고를 고수하며 집단 정치를 하고 진영 대립을 선동하고 있다”고 했다.

화상회담으로 만난 바이든·기시다 -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가 지난 21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이날 회담은 기시다 총리 취임 후 첫 미·일 정상회담이었다. /AP 연합뉴스

작년 한 해 미국은 통상·외교·정보 분야 장차관급 인사들을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도 연쇄 파견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의 대중국 견제·압박 전선에 동참해줄 것을 강력 요청했지만 한국은 즉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역시 일본은 즉각 동참을 선언했지만 한국은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작년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사실상 미국의 대중 견제 노선에 한국이 동참한다는 내용이었지만 이후 한국이 보여준 행동은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최근 북한의 네 차례 미사일 도발에 대한 입장을 두고서도 한·미 온도차가 뚜렷하다. 미국은 북한의 무력시위 때마다 ‘안보리 결의 위반’임을 들어 규탄하는 것을 넘어 단독 제재까지 발동했지만, 정작 북한 미사일의 사정권에 있는 한국 정부는 규탄 없이 유감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성명에 한국은 빠지고 일본이 들어가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최근 중동 순방도 임기 말 외교 난맥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 순방은 코로나 상황 악화와 북한의 연쇄 미사일 도발 국면에서 이뤄졌다. 청와대는 “꼭 가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했지만, 당초 예고했던 이집트에서의 방산 수출 등은 성사되지 않았다. UAE에서는 정상회담이 불발됐다. 이 때문에 야당 등에서는 “확실한 성과를 거둘 전망도 없이 이 와중에 자리를 비우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외교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이 마비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