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30일 자강도에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1발을 발사했다.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한 뒤 4년 2개월 만에 최고 수위 도발을 감행했다. 그런데 이날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응하는 한국과 일본 정부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시각은 이날 오전 7시 52분이었다. 일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4분 뒤인 오전 7시 56분 ‘북한 미사일 발사에 관한 총리 지시’를 내각에 하달했다. ▲정보 수집·분석에 전력을 들여 국민에게 신속·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라 ▲항공기·선박 등 안전 확인을 철저히 하라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비해 만전의 태세를 취하라는 3가지 사항이었다. 이 내용은 일본 총리관저 홈페이지에 게재됐다.
◇日총리 “국민에게 신속·정확한 정보 제공하라”
한국 정부의 최초 입장은 일본 총리 지시보다 1분 늦은 오전 7시 57분에 나왔다. 합동참모본부는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문자 메시지에서 “북, 동해상으로 미상발사체 발사”라고만 밝혔다. 합참은 통상 북한 미사일 발사 수 분 뒤 이 같은 입장을 관례적으로 배포하곤 했다. 그럼에도 미사일과 관련해 “국민에게 신속·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라”는 일본 총리의 지시와는 대조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오전 일본 정부의 정보 공개는 한국 정부보다 빨랐다. 오전 9시 3분, 일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임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오전 7시 52분 최고 고도 약 2000km, 비행 시간 30분, 사거리 800km로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 밖에 낙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日정부 “추가 정보는 신속 공표할 것”
마쓰노 장관은 일본 총리관저 상황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었다고 밝혔다. 회의가 끝난 뒤 기시다 총리는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강하게 비난하고 항의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정보 수집·분석과 경계·감시에 전력을 투입하면서 향후 추가 공표할 정보는 신속하게 공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 관방장관 기자회견이 시작되는 시점까지도 한국 정부는 북한이 쏜 발사체 기종이 무엇인지도 밝히지 않고 있었다. 합참은 일본 관방장관 기자회견이 시작되고 4분 뒤인 오전 9시 7분 “오전 7시 52분쯤 자강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지만 일본 장관의 발표보다 무성의한 내용이었다.
◇日언론 세부 제원 보도해도 한국軍은 침묵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NSC 전체회의를 소집한 시각은 오전 9시 25분이었다. 일본 총리의 지시가 나온 시각으로부터 89분, 북한 미사일 발사 시각으로부터 93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NSC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문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나 발언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브리핑 내용은 NHK 등 일본 언론에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합참은 미사일 고도, 사거리 등 세부 제원을 밝히지 않았다. 10시 24분부터 한국 언론이 일본 언론을 인용해 ICBM 또는 IRBM 발사 가능성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합참은 30여분이 지난 10시 57분에야 일본 보도 내용이 맞는다고 확인하면서도 비행 시간 등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韓정부 홈페이지에도 미사일 내용은 없어
문 대통령이 “북한 미사일이 중거리라면 모라토리움 선언 파기 근처로 간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이 알려진 것은 오전 11시가 다 돼가는 시점이었다. 또 “(북한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안정, 외교적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대한 도전이자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문 대통령 발언이 배포된 시점은 정오 즈음이었다.
일본 정부가 총리관저, 일본 방위성·자위대, 해상보안청 홈페이지에 총리 최초 지시 사항과 시각을 비롯, 미사일 관련 공지를 지속적으로 올린 것과 달리, 한국 정부의 청와대·국방부·합동참모본부 홈페이지에는 미사일 발사 상황과 관련한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다.
◇軍, 일본보다 4시간 늦게 브리핑
합참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개최한 시각은 오후 1시였다. 일본 관방장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한 시각보다 4시간가량 늦은 시점이었다. 그나마 합참은 북한 미사일 발사 사실을 인지하고도 처음엔 브리핑 계획을 공지하지 않았다. 기자단 요구에 뒤늦게 브리핑에 나선 합참은 일본의 분석이 먼저 나온 데 대해 “일본이 틀린 적도 있었다” “일본에 대해 우리가 답변할 필요는 없다”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하면 한국이 일본보다 탐지가 늦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사일이 동해상으로 날아간다면 정확한 탄착 지점 확인은 일본 정부보다 다소 늦을 수는 있으나 발사 지점, 고도, 사거리 등의 기본 제원은 한미 당국이 비교적 정확하게 관측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청와대에 먼저 합참의장이 들어가 보고를 한 뒤에야 정보 공개가 가능하다는 관료주의 탓이라는 것이다.
◇文 취임식 때 “주요 사안 직접 브리핑”
정치권에선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일본이 국민이 직접 투표로 선출한 대통령을 둔 한국보다 더욱 신속·정확하게 정보 공개를 한다는 것은 역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일본에선 총리 관저에 상주하는 기자들이 수시로 총리를 만나 질문을 퍼붓는 장면이 일상적이다. 반면 한국에선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은 물론, 정부 부처 장관들도 기자들과 자주 소통하지 않는다.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2017년 5월 10일 국회 중앙홀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문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하지만 북한이 4년여만에 최악의 도발을 한 당일, 국민은 외국 언론을 통해 먼저 정보를 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