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국에서 탈북민을 돕다가 공안에 체포돼 옥살이를 한 한국인 사업가 A씨에 대해 ‘국위 손상·밀입국 범죄 행위’를 했다며 여권 무효화 및 발급 제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정부의 여권 무효화 조치로 A씨가 출국을 못하면서 제3국에서 A씨의 도움을 기다리던 탈북민 6명이 체포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A씨의 변호인단은 “탈북민의 한국 입국을 돕는 행위는 국위를 손상시키는 행위가 아닌 국가가 가지는 법적 보호의무에 부합하며 국가가 장려하고 지원해야 하는 행위”라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국인 사업가 A씨는 2013년부터 중국 길림성 장백현에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도왔다. 지난 2019년 10월 위탁을 받고 장백현에서 탈북민 4명을 차에 태우고 심양으로 운송하던 중 검문에 걸려 체포됐다. 그는 재판에 회부되어 1년 2개월 형을 선고 받고 길림성 장춘 소재 ‘태북교도소’에서 복역 후 2021년 6월 출소·귀국했다.
오랫동안 탈북민 사업을 해오며 중국과 제3국 등지에 많은 인맥을 구축한 A씨는 귀국 후에도 탈북민 구출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중국에 있는 탈북민 6명을 라오스로 보내는 일을 맡게 됐다. A씨는 라오스로 출국해 지인의 차를 중국 절강성 소주로 보내 탈북민들을 라오스 국경지역인 운남성 푸얼까지 이동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A씨는 지난해 11월 19일 라오스로 출국하기 위해 공항에 나갔다가 여권의 효력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외교부가 지난해 8월 ‘여권발급·재발급 제한 및 효력상실’ 통지를 했지만 A씨가 발송 주소지에 거주하지 않아 전달되지 못해 뒤늦게 여권이 무효화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외교부는 A씨의 여권 효력상실 이유에 대해 ‘여권법 12조 3항 2호’ “외국에서 위법한 행위 등으로 국위를 크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하여 그 사실이 재외공관 또는 관계행정기관으로부터 통보된 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A씨는 여권 효력 상실로 라오스로 출발하지 못함에 따라 중국에 체류하던 6명의 탈북민들이 공안에 체포되어 구금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탈북민 6명은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택시를 타고 절강성 소주에 와서, 그곳에서 운남성 푸얼까지 가려고 타인의 신분증을 이용해 버스 티켓을 끊고 버스를 탔지만 경찰의 검문과정에서 신분증이 없는 것이 탄로나 전부 체포되었다”며 “(본인이)라오스에 갔을 경우 지인의 자동차를 절강성 소주로 보내 그들을 라오스 국경지역인 운남성 푸얼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을텐데 출국이 막혀 못했다”고 밝혔다.
A씨에 따르면 체포된 탈북민6명은 전부 여성으로 대부분이 중국에 인신매매로 팔려가 노예처럼 살던 중 탈출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A씨는 채팅그룹(위챗)으로 연결돼 한국에 오기를 원하는 탈북민 약 136명이 해외에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며 출국의 필요성을 밝혔다.
여권 효력 상실로 출국 금지된 A씨는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특별위원회 산하 해외탈북민 인권소위원회에 법률자문을 의뢰했다. 대한변협은 재중 탈북자의 대한민국 입국을 도운 A씨의 행위가 대한민국의 국위를 크게 손상시키는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북한인권특별위원회 차원에서 공동변호인단(법무법인 대아·소명·바른 등 4명)을 구성했다. 공동변호인단은 지난해 12월 9일 서울 행정법원에 ‘A씨의 여권에 대한 발급제한 등 처분의 취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20일 여권의 발급제한 등 처분의 집행을 정지’하는 신청을 제기했다.
변호인단은 신청서에서 “A씨의 여권이 계속 효력 상실의 상태로 방치하게 된다면 중국에서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서 한국으로 오기를 간절히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신체 및 생존환경이 극도로 심각해 짐으로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며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A씨의 여권 발급 또는 재발급에 대한 제한처분의 집행을 정지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또 “북한이탈주민지원법 4조는 ‘대한민국은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지원 등을 위히여 외교적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고 규정해 탈북민을 특별히 보호하고 외국에 체류중인 탈북민의 보호 및 지원을 국가적 의무로 명시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탈북민의 한국으로의 무사 입국을 돕는 행위는 국위를 손상시키는 행위가 아닌 국가가 가지는 법적 보호의무에 부합할 뿐 아니라 국가가 장려하고 지원해야 하는 행위”라고 했다. 오히려 “A씨가 탈북민을 구출하여 안전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는 ‘국제인권법상’ 정당한 행위로 해석된다”고 했다.
그러나 외교부측은 “여권 효력 정지는 적법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 소송대리인단은 지난해 12월 31일 서울지방법원에 낸 ‘답변서’에서 “A씨는 밀입국 범죄행위로 국위를 손상시킨 사실이 발생하여 그 사실이 피신청인에 대해 통보된자에 대해 2년 간 여권의 발급을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여권 효력 정지는 적법하다”고 했다. 또 “A씨의 변호인측이 제기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예방’과 관련해 A씨가 여권 무효화로 출국을 못해 중국에서 라오스로 이동하려는 탈북민들에 대한 안전위협 등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다는 부분도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행정법원 제4부는 관련 소송건에 대해 지난 13일 ‘기각’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 측이 제기한 여권발급 제한·무효화 처분 ‘효력 정지’신청건에 대해 “소명자료만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그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A씨 측 공동변호인단의 이영현 변호사는 “즉각 항고장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