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제재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동맹·우방들 가운데 가장 더디고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한국을 겨냥해 미국 전직 관리가 “소심하다” “부끄럽다”는 직설적 표현으로 불만을 쏟아냈다. 미 국무부는 토니 블링컨 장관이 지난 24일 이후 16국 외교장관들과 전화 통화한 사실을 웹사이트에 열거하며 한·미 외교장관 통화 부분에서만 “제재 세부 사항을 논의했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제재 동참에 미온적인 한국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마크 피츠패트릭 전 국무부 부차관보는 26일 미국의소리(VOA) 대담에서 “한국의 소심하고(timid) 미온적인(tepid) 접근은 부끄럽고 어리석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 명단에서 눈에 띌 정도로 빠진 것은 현명하지 못하고 수치스럽다(shameful)”며 “왜냐하면 한국은 과거 침략의 피해자로서 대대적인 원조를 받았고 그런 일이 또다시 벌어지면 그런 도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서 한국은 미국의 동맹 가운데 유일하게 대러 제재 동참을 주저하다가 지난 24일 러시아의 전면적인 우크라이나 침공 30분 전에야 동참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독자 제재엔 선을 그었다. 국제사회가 추후 부과할 제재의 수동적 이행을 ‘동참’으로 포장한 것이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한미정책국장도 VOA에 “과거 한국은 고개만 숙이고 경제적 이익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한국은 물러서지 말아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했다.
미 국무부는 25일(현지 시각) 한·미 외교장관 통화 소식을 전하며 “블링컨 장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추가 제재와 새로운 수출 통제 방안의 세부 사항을 (정의용 장관과) 논의했다”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외교 소식통은 “실무선에서 주고받을 법한 내용으로, 국무장관이 직접 나서 설득해야 할 정도로 한국이 제재 동참에 비협조적임을 시사한다”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정 장관을 제외한 나머지 15국 외교장관들에게는 “제재 채택에 감사”(일본), “(제재를 부과한) 신속한 움직임에 감사”(영국), “강력한 제재 조율에 감사”(캐나다) 등의 표현으로 각국의 신속한 제재 이행·동참을 치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