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1일 방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통한 글로벌 공급망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반중(反中) 경협 구상’인 IPEF의 정상회담 의제화를 넘어 한국의 IPEF 가입을 예고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제협력센터장은 “미·중 갈등 국면에서 균형 외교란 이름으로 눈치만 보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미국 쪽으로 과감하게 한 발짝 다가서겠다는 상징적 조치”라며 “군사·외교 협력 위주였던 한미 동맹의 영역을 경제 분야로도 확장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했다.
IPEF는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과 인프라, 디지털 경제, 신재생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아·태 지역의 동맹·파트너들을 규합해 구축하려는 경제 연대다. 바이든 대통령이 작년 10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처음 제안했고, 이후 방한한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외교·안보 고위 관료들은 예외 없이 IPEF의 취지를 설명하며 동참을 호소했다.
중국 의존도 축소, 중국 영향력 견제를 위한 구상이고,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의 대항마로 불리다 보니 IPEF는 태생적으로 반중(反中) 연대의 성격이 짙다. 실제 핵심 과제도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국의 IPEF 참여는 사실상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 전략에 함께한다는 외교적 함의를 갖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IPEF 동참에 부담을 느꼈던 것도 중국의 반발, ‘제2의 사드 보복’ 같은 사태를 우려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선 이후로는 외교부와 산업자원통상부 등에서 “IPEF를 환영한다”는 입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이 시기를 전후해 IPEF 참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며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과의 협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IPEF 참여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단순히 동맹과의 의리 차원이 아니다”라며 “미국 주도로 급속히 진행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에 동행할 타이밍을 놓칠 경우 한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막대하다는 실리적 판단이 작용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도 이날 “공급망 안정화 방안뿐 아니라 디지털 경제와 탄소 중립 등 다양한 경제 안보에 관련된 사안이 포함될 것”이라며 IPEF 참여가 글로벌 경제의 굵직한 이슈들과 직결되는 사안임을 강조했다.
대통령실과 외교부 등은 IPEF 가입 공식화에 따른 중국의 반발·보복 가능성을 면밀히 살피면서도 실제 중국이 해코지할 가능성은 작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사드 배치 이슈와 달리 IPEF는 참여국이 많아 중국이 한국만 콕 집어 때릴 명분이 없다”고 했다. IPEF 참가국으로는 한국과 미국 외에 일본·호주·뉴질랜드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싱가포르를 비롯한 아세안 회원국 다수도 명단에 이름을 올릴 전망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IPEF에 대한 한국의 지지를 공식화하고 후속 협의를 이어가자는 취지의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직후 방일 기간(22~24일)에 도쿄에서 IPEF 출범 세리머니를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다만 이번에는 완성된 내용으로 IPEF를 출범시키기보단 출범을 위한 협의 개시를 선언하는 정도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