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의 전·현직 고위 관료들은 14일 “국제 보건 위기와 교역 질서 변화 등 막중한 시대적 과제를 마주한 이때 3국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 팬데믹과 북한의 도발, 미·중 갈등 등이 중첩된 상황에서도 3국 협력이 공동 번영에 필수적이라는 데 공감한 것이다. 이날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이 서울에서 개최한 국제포럼에선 전·현직 관료들 외에도 3국의 외교·경제 전문가들이 온·오프라인으로 만나 다양한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기조연설에서 “신뢰 결핍이야말로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각국 정부와 정치권은 3국 문제를 국내 정치와 결부시키지 않고 긴 안목으로 냉철하게 다뤄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지식인과 NGO(비영리단체)도 역사 문제나 영토 분쟁이 보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지난 2년간 열리지 못한 한·중·일 정상회의를 조속히 개최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매년 한·중·일이 돌아가며 개최해 온 3국 정상회의는 2019년 12월 중국 청두(成都) 회의를 끝으로 개최되지 않고 있다. 조 차관은 “3국 관계 발전을 위한 정상 차원의 의지를 다질 필요가 있다”며 “9차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한·중·일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협력하겠다”고 했다.
포럼에서는 보건 위기, 글로벌 공급망 파괴와 같은 코로나 시대의 도전 과제들을 두고 3국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의견들이 개진됐다.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 일본 대사는 “미증유의 보건 위기 사태를 초래한 코로나, 근래 들어 자주 발생하는 자연재해는 3국 국민의 건강과 생활에 심각한 위협을 줬다”며 ‘3국 간 연대’를 강조했다. 김성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공급망 재건과 관련해 “세계화의 잠정적 휴식기 이후 공급망은 지역별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며 “3국과 동아시아 지역 대부분 국가들이 참여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이 올해 1월 발효됐는데 역내 교역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 측 참석자들은 큰틀에서 3국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등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 구상을 견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는 “현재 글로벌 경제는 코로나에 발목이 잡혀 있고 공급망 타격, 탈(脫)세계화 추세가 대두되고 있다”며 “3국은 더더욱 손을 맞잡고 지역과 글로벌 경제 회복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했다. ‘탈세계화 추세’ 언급은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과 중국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의도하고 있다는 중국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됐다. 양옌이(楊燕怡) 전 주유럽연합 중국 대사는 미국의 인태 전략에 대해 “나토의 동아시아판 계획에 불과하다”며 “이 지역을 분쟁, 대립으로 몰아넣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열린 TCS 국제포럼은 조선일보와 일본 아사히신문, 중국 인민일보가 공동 후원했다. 어우보첸(歐渤芊) TCS 사무총장은 개회사에서 “TCS가 3국 협력을 위한 학문 연구, 정치적 분석 등을 위한 통합 플랫폼으로 역할하길 바란다”고 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축사에서 “코로나 팬데믹과 경제 위기가 자국 중심주의를 심화시켜 3국 협력을 시험에 들게 했지만 3국 협력의 유지와 발전은 한·중·일 각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