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길을 미군에 내줄 순 없다!” “소성리에 군대는 필요없다!”
지난달 28일 오전 6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차로.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로 통하는 유일한 길목에 소성리 주민과 사드 반대 단체 회원 20여 명이 모였다.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도로 한복판을 점거한 이들은 ‘소성리에 평화를’ ‘결사거부 환경영향평가’ 등이 적힌 손 피켓을 흔들며 집회를 시작했다. 기도문 낭독, 성가 제창이 이어졌다. 종교 집회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집회 시작 40여 분이 지나자 경찰이 강제 해산에 나섰다. 한 남성은 경찰관이 자신의 팔을 잡자 “이거 놓으라”고 소리쳤고, 또 다른 남성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경찰관 네 명이 남성의 팔다리를 붙들고 몸을 들어 올려 마을회관 앞에 설치된 폴리스라인 안쪽으로 옮겼다. 도로 위에서 끝까지 버티던 소성리 주민 한 명은 사드 기지로 향하는 승용차 2대와 화물 트럭들을 향해 “야이 미친 X야. 돌아가라!”라고 소리쳤다. 5년 전 사드 포대가 처음 들어온 뒤로 매일 되풀이되는 장면이다.
경찰 관계자는 “그래도 사드가 처음 들어왔을 때에 비하면 기세가 크게 꺾였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말이었던 2017년 4월 사드가 배치되고 한동안은 시위대 200~300명이 발사대 이송 차량을 향해 유리병을 던지고 트럭에 쇠사슬로 몸을 칭칭 감은 채 경찰에 저항했다. 외부의 전문 시위꾼들이 몰려들어 주민들에게 과격 시위 기법을 전수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집권 후 시위 동력은 급속히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의 정상 가동에 필수적인 환경영향평가 등 정식 배치 절차에서 사실상 손을 놓으면서 사드 이슈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집회는 소성리 주민 9~10명 정도와 외부 단체를 포함해 25~40여명 정도가 참여하는 정도”라며 “5년이 지나며 소성리 어르신들 건강이 약해지기도 했고 내부 분위기도 지쳐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소성리 집회 현장의 공기가 달라진 것은 지난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사드 기지 정상화’ 방침을 공표하면서부터다. 소성리 주민들과 사드 반대 단체 회원 50여 명은 지난달 23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드 기지 정상화 반대를 주장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첫 상경 시위였다.
국방부는 일단 일반환경영향평가를 서두르겠다는 방침이다. 이 평가를 끝내야 기지 보강·증축 공사를 통해 5년간의 야전 배치 상태를 끝내고 정식 배치를 할 수 있다. 한·미 장병이 겪는 열악한 복무 여건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절차다. 원래 박근혜 정부는 6개월 정도 걸리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탄핵 정국에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1년 정도 걸리는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도록 방침을 바꿨고, 주민 반발을 이유로 첫 단계인 ‘평가협의회 구성’도 차일피일 미뤘다. 국방부는 지난 16일 성주군에 ‘평가협의회에 포함될 주민 대표를 추천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5년 만에 환경영향평가의 첫 단추를 끼운 것이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르면, 평가협의회는 지자체 직원, 전문가, 국방부 직원 등 총 10여 명으로 구성되며 주민 대표 1명 이상을 반드시 포함하게 돼 있다. 소성리 주민들은 협의회 참여를 거부하고 있어 국방부의 고민이 크다. 주민 대표가 소성리 주민일 필요는 없지만, 다른 지역 주민이 참여할 경우 소성리 주민과 사드 반대 단체들에 반발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해 온 ‘외부 세력’들이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협의회 구성’이란 고비만 넘기면 ‘평가 범위 및 방법 심의→평가서 초안 작성→자료 공람 및 주민 설명회 등 주민 의견 수렴’ 순으로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게 국방부의 생각이다.
환경영향평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자유로운 기지 접근권 보장이다. 2017년 4월 사드 배치 이후 지난해 5월까지 기지 입구가 사드 반대 단체와 주민들에게 막혀 기지 신·증축을 위한 자재와 인력, 장병 생필품 등은 제대로 반입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성주 기지에 주둔하는 한미 장병 400여 명은 임시 컨테이너 막사에서 외풍에 시달리는 등 열악한 생활을 해왔다. 특히 우리 장병이 지내던 노후화된 클럽하우스는 2년 넘게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다 미국 측의 강한 항의로 지난해 5월부터 주 2회 물자 반입이 이뤄졌고, 지금은 주 5회까지 반입 횟수가 늘었다. 국방부는 물자 반입 횟수를 주 7회로 늘려 사실상 무제한적 기지 접근권을 보장하겠다는 계획이다. 미 측 역시 미군 병력과 사드 레이더 가동 등에 필수적인 발전용 유류, 사드 장비의 ‘자유로운 지상 출입’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는 소성리 주민들의 반발로 헬리콥터를 통해 기지 내로 반입되는 실정이다. 군 관계자는 “사드 기지 유류는 성주 기지와 가까운 왜관의 미군기지 캠프 캐롤에서 옮기는데 정작 헬기는 경기도 이천에서 날아온다”며 “낭비되는 시간적·금전적 비용이 막대하다”고 했다.
사드 정상화의 세 번째 조치는 사드 기지 내 미군 일부 시설 부지에 대한 정식 공여(供與) 절차를 마무리 짓는 것이다. 앞서 국방부는 2017년 성주 골프장 부지 약 148만㎡ 중 주한미군에 30여만㎡ 면적의 부지를 1차 공여했다. 현재 국방부는 미군과 2차 공여 부지 면적을 협의 중이며, 일반 환경영향평가와 함께 공여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측은 “장비 운용을 위한 기지 내부 도로 공사 등 부지 개발 공사를 위한 잔여 부지를 미국 측에 공여할 예정”이라며 “2017년 미군이 요구했던 수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도 사드 철거 비현실적이라 생각… 속도전보다 경청을”
사드 배치 과정을 지켜보며 주민들과 소통해 온 군·경찰 관계자들은 30일 “정부가 5년 만에 사드 기지 정상화에 나서는 만큼 ‘속도전’보다 주민들의 불만을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사드가 더 이상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기지 정상화는 국가 안보에 필수적 조치’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성주 주민들이 표면적으로는 ‘사드 기지 완전 철수’를 주장하지만, 속으로는 5년 전 반입이 끝난 발사대를 도로 빼내는 것이 비현실적임을 잘 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주민들은 절차적 정당성이 무시된 것에 분노하고 있다”며 “정부가 과거 정부의 사드 추진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2016년부터 사드 관련 실무를 담당한 전직 국방부 관리(예비역 대령)도 “현 여권은 사드 정상화를 방치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지만, 박근혜 정부도 사드 배치 결정 발표(2016년 7월) 당시 주민 설득 노력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기지 정상화를 추진하려면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주민들이 그동안 겪은 정신적·물질적 피해에 대해 위로하고, 보상 문제도 보다 적극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현재 국무조정실과 관련 부처들 중심으로 성주군이 2017년 주민 보상 차원에서 건의했던 사업 일부가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미군 잔여 부지 내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성산 가야 사적공원 조성 등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한 것이기도 하다. 사드 정상화 이후 지역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성주군뿐 아니라 사드 기지를 맞대고 있는 김천 지역에 대한 보상도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