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강제 북송된 귀순 어민들이 정부 합동 조사 당시 A4 용지 20여 장의 자기소개서 등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는 의사를 시종일관 밝힌 것은 “애당초 귀순할 의사가 없었다”는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들의 주장과 정면 배치된다.
강제 북송을 주도한 정의용 전 청와대 안보실장은 이날 입장문에서 “북한 어민들이 동해항까지 오는 과정에서 귀순 의사를 전혀 밝히지 않았다”며 “합동 신문 과정의 귀순 의사를 확인하는 단계에 귀순 의향서를 제출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송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귀순 어민들이 나포 이후 동해항으로 입항하기 전에도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귀순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한 정 전 실장 주장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최영범 대통령실 홍보수석도 이날 “(문 정부 인사들이) ‘귀순 의사가 없었다’고 했던 것은 궤변”이라며 “그렇다면 자필로 쓴 귀순 의향서는 왜 무시했단 말이냐”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탈북 어민들을 북측이 원하는 대로 사지(死地)로 돌려보냈다”며 “야당과 지난 정부 관계자들은 정치 공세가 아니라 조사에 성실하게 협조해서 국민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은 또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강제 북송 다음 날인 2019년 11월 8일 국회에서 “신문 과정에서 ‘죽더라도 돌아가겠다’는 진술도 분명히 했다”고 말한 부분도 수사하고 있다. ‘죽더라도’ 발언은 어민들이 북한 김책항으로 돌아가면서 언급한 적은 있지만, 김책항을 떠나 한국으로 내려올 때부터는 “남한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통일부 장관이 거짓말로 북한 어민들의 귀순 진정성을 오염시킨 것”이라고 했다.
정 전 실장은 이날 흉악범의 경우 “국내법도 입국을 허용하지 않도록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북한 어민의 귀순 의사를 묵살하고 북송할 국내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출입국관리법이나 난민법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귀순 어민에게 적용될 수는 없다.
대통령실은 이와 별도로 배포한 보도 참고 자료에서 ‘귀순 어민 북송 사건 3대 문제점’으로 정부 조사 조기(早期) 종료와 북한 어민들의 귀순 의사 및 국내외 법 무시를 꼽았다. 대통령실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페스카마호 선상(船上) 살인 사건’ 변호인으로 활동하던 당시 “국민을 살해한 외국인 선원들도 우리 동포로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한다”고 변론했던 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는 ‘문 전 대통령이 강제 북송 사건과 페스카마호 사건에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정부는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재발 방지를 위한 모든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최근 문재인 정권 인사들은 귀순자들을 ‘흉악범’이라고 강조하며 강제 북송을 정당화하고 있다. 정의용 전 실장은 이날 헌법이 탈북자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규정하고 있는데도 “흉악범들은 탈북민도 아니고 귀순자도 아니다”라며 “대한민국 헌법이 이런 살인마들을 보호하라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탈북 어민을 엽기적인 살인마라 규정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당연히 정부 기관이 우리 법 절차에 따라서 충분한 조사를 거쳐 결론 내렸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검찰은 출국 금지 상태인 정 전 실장을 조만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전해졌다. 또 ‘귀순 어민들의 살인 혐의를 정식 수사로 확인해야 한다’는 합동조사단 내부 의견이 묵살된 정황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훈 전 국정원장의 경우 귀순 어민 강제 북송 과정에서 허위 공문서를 작성하고, 정부 합동조사도 강제로 종료시킨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