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중국 공산당 서열 3위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국회의장 격)을 만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문제가 한중 관계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한국에 초청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리 위원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양국의 공동 이익을 확대해 나가자”면서 이렇게 말했다. 리 위원장은 사드 문제 등과 관련해 양국 간 긴밀한 소통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윤 대통령도 방중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리 위원장의 만남은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김진표 국회의장이 리 위원장을 초청해 이뤄졌다.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한은 2015년 장더장(張德江) 상무위원장 이후 7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리 위원장에게 “양적인 면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해온 한중 관계를 향후 30년간 상호 존중과 호혜의 정신에 입각해 질적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이런 측면에서 시 주석 방한은 한중 관계의 새로운 30년을 열어나갈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리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초청을 시 주석에게 정확하게 보고하겠다”면서 “윤 대통령도 편리한 시기에 방중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양측이 긴밀한 소통을 통해 사드 문제가 한중 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중국이 반발하는 사드 문제를 언급했다. 리 위원장도 상호 예민한 문제에 대한 긴밀한 소통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다만 이날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 성격의 ‘인도 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와 반도체 회의 ‘칩 4′에 한국이 참여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과 리 위원장은 수교 30년을 맞은 양국이 협력을 더욱 강화하자는 데도 뜻을 모았다. 윤 대통령 취임 후 한국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 대열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양국 최고 지도부가 서로 자극하기보다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는 데 일단 공감대를 이룬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윤 대통령이 내주 뉴욕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임을 중국 측도 감안했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리 위원장에게 ‘향후 30년을 향한 한중 공동 이익 확대’를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쓰촨성 지진으로 피해 입은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속히 안정을 되찾을 수 있길 기원한다”며 “올해는 한중 외교 3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양국이 공동의 이익을 확대해 나가고 국민의 우호와 신뢰가 더 깊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리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의 따뜻한 인사 안부를 전한다”며 “(수교) 30년 동안 양국 지도자들의 공동 노력하에 중·한 관계는 시대와 더불어 전방위적 발전을 이뤄왔다”고 했다.
특히 윤 대통령과 리 위원장이 제기한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 문제는 의전(儀典)을 넘어 외교 전략적 사안이기도 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두 번 방중하는 동안 시 주석은 한 번도 방한하지 않았다. 시 주석 방한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인 2014년이 마지막이다. 윤 대통령이 ‘시 주석 방한’을 강조한 것은 이번엔 시 주석이 먼저 방한해야 한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사드 문제를 거론한 것은 중국이 북한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사드를 미국의 군사적 중국 견제라며 시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북한이 ‘핵 선제 사용 법제화’를 발표하며 핵과 미사일 능력을 빠르게 증강하는 상황에서 방어 수단인 사드에 대해 중국이 계속 문제 삼는 것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리 위원장도 사드 문제 해결을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다만 리 위원장은 이날 윤 대통령 예방에 앞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한 회담에선 사드에 대해 “(미국이) 중국을 협박해 중국의 전략 안보 이익을 훼손하는 불순한 의도”라며 반발했다고 한다. 리 위원장은 회담 후 공동 발표에서 “양측이 예민한 문제를 계속 적절히 처리하고 양국 관계의 건전하고 안정적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고 인식을 같이했다”고도 했다. ‘예민한 문제의 적절 처리’는 중국이 사드 문제를 제기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리 위원장은 미국 주도로 이뤄지는 대중 견제 성격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대해서도 “미국 독자주의”라면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 세계 공급망의 질서를 해치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