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유엔에서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co-sponsorship)’으로 4년 만에 참여한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관계 특수성’을 이유로 2019년 이후 불참해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2일 “윤석열 정부가 자유, 민주주의, 인권 같은 가치 기반 외교를 지향하는데 북한의 반(反)인권 범죄를 규탄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며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고 했다. 결의안은 현재 EU 주도 아래 10월 말을 목표로 초안을 작성 중이고, 연말 유엔총회에서 18년 연속 채택될 것이 확실시된다.
국제사회에선 한국의 공동 제안국 참여에 대해 “복귀를 환영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유럽연합(EU) 대변인실은 21일(현지 시각) VOA(미국의 소리) 방송에 “인권을 존중, 보호하라고 북한에 촉구하면서 국제적 단결을 보여주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북한인권결의안은 북한 내 조직적이고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 표명과 함께 즉각 중단 촉구, 인도적 기구의 접근 허용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매년 6월)와 사회적·문화적·인도적 문제를 다루는 유엔총회 제3위원회(연말)가 각각 주도한다. 이번에 우리 정부가 공동 발의를 결정한 것은 유엔 총회 제3위원회 결의안으로, 2005년부터 17년 연속 채택됐다. 해마다 미국, EU 등 50~60국이 공동 발의국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2019년부터 ‘남북 관계의 특수 상황을 고려한다’며 유엔 차원의 결의안 공동 발의에 불참해왔다. 이 때문에 휴먼라이츠워치(HRW) 같은 국제 인권 단체 등은 “인권 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이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이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에 침묵한다”고 비판했다. 올해 2월에는 북한 인권 문제를 전담하는 유엔 특별보고관이 방한해 “한국의 예상 못 한 불참은 일보(一步) 후퇴이며,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윤석열 정부가 4년 만에 북한인권결의안 동참을 결정한 것은 ‘세계 중추 국가’를 지향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윤 대통령은 20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정권이 아닌 주민을 중심에 두고 자유와 인권 차원에서 북한 문제에 접근하겠다는 시각을 밝혔다”며 “공동 제안국 참여는 자연스러운 절차”라고 했다.
윤 정부가 비핵화 의지만 보여도 경제·군사·안보 지원을 하겠다는 ‘담대한 구상’ 등 북한에 대화의 손을 내밀고 있지만, 인권유린 등에 대해선 침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7월 기자 간담회에서 “북한 인권은 남의 일이 아니고 북한 주민의 기본적 인권, 삶의 질을 위해 대한민국이 기여할 게 대단히 크다고 생각한다”며 “새 정부는 국제사회의 결의안 등에 적극 참여할 생각”이라고 했다. 황준국 주유엔 대사도 이달 11일 “북한 인권은 보편적 가치 수호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며 “공동 제안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윤 정부는 전 정부 때 사문화됐던 북한인권법 정상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7월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공석(空席)이던 북한 인권 대사에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임명했다. 또 통일부는 민주당의 이사 추천 거부로 표류 중인 북한인권재단 출범을 추진하고 있다. 권영세 장관은 이달 13일 이정훈 연세대 교수와 김범수 사단법인 세이브NK 대표 등 2명을 장관 몫 이사로 추천했다. 또 최근 방한한 성 김 미 대북정책특별대표는 2017년부터 공석인 북한인권특사 관련, “여러 진척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발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혀 한미가 공조해 북한에 대한 인권 압박을 강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