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27일 미 의회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차별 문제와 관련, “한국 전기차 생산이 미국 내에서 시작되기 전까지 과도 기간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한국 측과 긴밀히 협의해 지속해서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국장(國葬)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오전 도쿄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회담을 갖고 “한국 측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대차가 2025년 준공을 목표로 미 조지아주(州)에 전기차 전용 생산 공장을 연내에 착공할 예정인 가운데, 우리 자동차 업계가 요구하고 있는 ‘준공 이전까지 유예’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정부와 자동차 업계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따라 한국산 제품을 미국산과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대(大)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미국에 전기차 공장 설립 계획을 확정했거나 대규모 투자 계획이 있는 기업은 현지 생산이 본격화할 때까지 IRA 적용을 유예해주는 것도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조지아주 공장 설립에 55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도심항공·로봇·자율주행 등 신사업까지 합치면 투자액이 총 105억달러(약 15조원)에 이른다.
해리스 부통령의 “과도 기간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협의” 언급이 IRA 시행령 개정 등 유의미한 정책 변화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 총리는 “한국과 미국은 인권, 시장경제 등 세계 공통의 가치를 지키는 데 협력을 진전시키고 있다”며 “많은 이슈가 지금 당장 완전히 해결될 수 없지만 앞으로 한국 등에서 (협의를) 이어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자동차 업계는 ‘쿼터 할당’을 통해 약 10만 대까지는 보조금이 적용되도록 해주는 방안도 제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에도 트럼프 정부가 수입산 철강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우리 정부는 협상을 통해 ‘수출 쿼터’를 할당받은 적이 있다. 백악관은 이날 회담에 대해 “해리스 부통령은 IRA 법안의 전기차 세제 조항에 관련한 한국의 우려를 이해하고 강조했다”며 “양측이 계속해서 상의하기로 합의했고, 첨단기술·반도체·우주 분야 협력을 통해 경제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데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선 북한 핵무력 법제화와 7차 핵실험 가능성 등 북핵 대응 방안도 의제로 올랐다. 한미는 “북한의 최근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야기하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할 것을 합의했다”고 했다. 백악관은 “(상호) 방위 관계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확인하고, 우리 시대를 정의할 도전을 받아들이기 위해 동맹을 확장하는 조치를 환영했다”고 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29일부터는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을 예방한다. 비무장지대(DMZ)를 찾아 주한미군 측 지휘관들로부터 작전 브리핑도 받을 예정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과 한국의 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와 번영을 위한 구심점”이라고 했고, 한덕수 총리는 “서울 방문 기간 DMZ에 가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라며 “북한에 대해 단호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백악관은 별도 성명을 통해 “부통령의 방문이 한미 동맹의 힘, 그리고 북한이 일으키는 어떤 위협에 대해서든 한국과 함께 맞서려는 미국의 결의를 강조할 것”이라며 “부통령은 수만 명의 한미 군인이 함께 싸우다 숨진 공동의 희생을 돌아보고, 미국의 철통같은 대한(對韓) 방위 공약을 재확인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