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힘든 노동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은 수많은 국군 포로의 실상을 국민들이 알 수 있게 전쟁기념관에 (국군 포로 문제를) 전시해주세요. 남쪽에 남아 있는 생존 국군 포로는 14명인데 이들이 사망하면 가족들 희망에 따라 현충원에 묻혔으면 합니다.”
탈북한 국군 포로 유영복(92)씨가 다음 달 1일 제74회 국군의 날을 앞두고 ‘마지막 소원’을 밝혔다. 지난달 25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북한 인권 단체 ‘물망초’ 박선영 이사장에게 보낸 친필 탄원서에서 한 말이다. 육군 제5사단 소속 소총수(일병)였던 유씨는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불과 40여 일 전인 1953년 6월 10일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30년을 함경남도 단천의 검덕광산에서 측량사로 일했고, 2000년 탈북해 10년 넘게 국군 포로 송환 운동을 했다.
유씨는 “북한은 (국군 포로) 수만 명을 억류했고 탄광, 광산 등에 투입해 고된 노동을 강요하고도 한 명의 국군 포로도 없었다고 억지 주장을 한다”며 “그러나 80명이 탈북해 조국으로 귀환했고, 북한의 비인도적 만행을 세상에 똑똑하게 증언했다”고 밝혔다. 유씨 증언처럼 1994년 고(故) 조창호(1932~2006) 중위를 시작으로 2010년까지 81명이 고향 땅을 밟았다. 이들 중 현재 14명이 생존해있는데 평균연령이 90세가 넘어 대부분이 병상에 있다고 한다. 탄광에서 일하며 “하루 종일 유독가스를 마셨다”는 유씨도 만성 폐·기관지 질환을 앓고 있다.
유씨는 “국군 포로들의 실상을 전쟁기념관에 반드시 전시해 국내외와 국제사회에 명확하게 알려달라”고 했다. 앞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등이 “6·25전쟁으로 약 5만~7만명이 북한과 동맹 국가(중국)에 억류됐다”고 했지만, 북한은 포로 교환이 이뤄진 1954년 이후 “강제 억류 중인 국군 포로는 공화국에 한 명도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유씨는 “노동에 시달리다 북한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당한 수많은 국군 포로의 명복을 빌어줄 추모 탑을 설립하고, 14명뿐인 생존 국군 포로들이 현충원에 매장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도 했다.
유씨는 2000년 김대중 정부가 6·15 공동선언에 따라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북송(北送)한 것에 대해 “그들은 북한으로 돌아가 훈장을 받았고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고 했다. 이어 “그런 사람들은 보내주면서 왜 대한민국을 지키려 싸운 국군 포로, 납북자 한 명이라도 데려오지 못하나. 참으로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유씨는 “(이전 정부에서) 그런 요구조차 했다는 증언도 없으니 참으로 비굴한 처사라 느껴진다”고 했다.
유씨는 올해 5월 탈북한 국군 포로로는 최초로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돼 참석했고, 2월에는 방한한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과 면담을 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를 향해 “남북 관계에서 반드시 상호주의 원칙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이른바 ‘담대한 구상’ 같은 외교적 노력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쌀과 비료, 많은 돈을 일방적으로 북한에 지원해주고도 비방, 중상, 위협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