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출근길 문답을 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이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하며 대남 위협 수위를 높이자 우리 정치권과 학계 일각에서 그동안 자제했던 핵무장 논의의 공론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북한 비핵화가 30년 넘는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요원해진 데다, 동맹의 선의(善意)에 의존하는 확장 억제(핵우산) 말고는 북핵에 대응할 수단이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핵은 핵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는 군사적 상식으로 돌아갈 때라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우리도 임시적으로 전술핵을 배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는 “대통령으로서 지금 현재 이렇다 저렇다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면서도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朝野)의 여러 의견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을 바탕으로 아주 견고한 대응 체계를 구축해서 잘 대비해 나가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와 결이 달라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올해 5월 CNN과 한 취임 후 첫 인터뷰에서 “유사시 미국이 미사일 방어와 핵우산을 제공할 것”이라며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에 대해 선을 그었다. 정부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도 관련 질문이 있을 때마다 “실익이 없다”고 해왔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이 이날 전술핵 재배치 주장과 관련, “따져보겠다”고 한 것이다.

북한이 지난달부터 발사한 탄도미사일 사거리. /조선일보DB

이미 여권 일각과 학계에선 북핵 위협과 맞물려 대북 핵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출신인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말 담대한 사고와 전략을 추구하는 정부라면 이제는 북한 핵의 불가역성을 인정하고 이에 대비한 우리의 핵전력 보유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핵무장 논의와 관련한 한국의 선택지는 ①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② 미국이 동맹국에 배치한 전술핵을 해당국과 공동 운용하는 이른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 협약 ③ 한국의 독립적 핵무장화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미국은 1958년부터 전술핵을 주한미군에 배치하기 시작해 한때 900여 발에 달했지만, 1991년 북한의 핵 개발 명분을 없애겠다는 취지로 전량 철수했다. 정치권에선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재배치를 주장해왔고, 최근에는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홍현익 국립외교원장도 “상시 배치로 간주될 정도의 해상 및 공중 순환 배치”를 언급한 상태다. 하지만 미국이 “동북아 내 평화 유지에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거듭 반대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북한이) 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미국과 주변 우방국들이 함께 미국의 핵을 운용하는 협정을 맺자는 주장도 있다. 핵 사용 최종 권한은 미국이 보유하되 핵 운용 결정 과정과 투하 임무 등에 동맹들이 공동 관여하자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캠프 국방정책특별위원장을 지낸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1일 언론 기고에서 “지금의 확장 억제는 2%가 부족하다”며 “미국의 핵 능력, 기획 절차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 공유를 확대하고 한미 공동 기획을 강화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후 독자적 핵무장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미국이 NPT를 주도하고 있고 국제 제재 등이 뒤따를 수 있어 실현 가능성은 가장 낮다는 평가다. 다만 “북한의 핵 위협이 NPT가 규정한 ‘비상사태’에 해당하기 때문에 한국의 탈퇴가 위법이 아니다”(대릴 프레스 다트머스대 교수)라는 주장도 있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정부가 핵무장 관련 검토를 하는 것은 없다”면서도 “북이 7차 핵실험을 한다면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