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왼쪽) 대통령이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가운데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오른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3국 정상은 이날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안보리 결의에 따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공약을 재확인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국제사회의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한·미·일 3국 정상이 13일(현지 시각) 북핵 위협 대응은 물론 첨단기술·공급망·에너지 등 경제 안보 협력, 남중국해 문제 등 글로벌 안보 이슈 대응, 기후변화 협력 강화를 포함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3국 정상이 북한 문제 단일 현안이 아니라 경제·안보 등 모든 이슈를 망라한 포괄적 공동성명을 채택한 것은 처음이다. 정부는 “북핵 위협 대응으로 시작된 한·미·일 3국 협력이 대(對)중국 공조를 포함해 훨씬 광범위한 기능을 하는 협력 틀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 도발과 관련해서 3국 정상은 핵우산(확장억제)을 강화하고 북 미사일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중국을 염두에 둔 한·미·일 경제안보대화도 신설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 후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각각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3국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 대통령이 하루에 미·일과 양자·3자 정상회담을 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인 2016년 3월 이후 6년 8개월 만이다.

3국 정상이 채택한 공동성명은 서문에 이어 안전한 인도-태평양 지역과 그 너머 확대되는 역내 파트너십 경제적 번영, 기술 선도 및 기후 위기 대응 등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구성됐다. 북핵 문제는 ‘인도-태평양’ 소제목 아래 일부분만 할애됐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인태 수역에서의 불법적인 해양 권익 주장, 아세안 및 태평양 도서국과의 협력, 경제안보, 기후변화 대응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한·미·일, 한미, 한일 정상회담 주요 내용

특히 3국 정상은 “불법적인 해양 권익 주장 등을 포함해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경제적 강압에 함께 대항하고, 투명한 차관 공여 관행을 한목소리로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을 직접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으면서 사실상 중국을 겨냥해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는 3국 연대를 강화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미 바이든 행정부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해석됐다.

한·미·일 3국 정상은 지난 7월 나토 정상회의 이후 4개월여 만인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를 계기로 다시 머리를 맞댔다. 북한이 최근 탄도미사일 등을 동원해 고강도 도발을 이어가는 것은 한·미·일 3각 공조를 흔들려는 무력시위라고 보고 3국 공조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3국 정상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7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은 한층 적대적·공세적인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며 “북한 미사일 중 1발은 최근 동쪽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우리 수역에 착탄했다. 이는 분단 후 처음 있는 심각한 도발”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토대로 한층 적대적·공세적인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며 “한·미·일이 연대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이러한 무모한 도발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태원 참사 추모 기간 중 도발임을 강조하면서 “김정은 정권의 반인륜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핵 위협이 계속되는 만큼 3국 파트너십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3국 연대를 더욱 강화하고 의연하게 대응하고자 한다”고 했다.

3국 정상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핵우산(확장억제)’ 공약을 재확인하고 “북한 미사일로 야기될 위협에 대한 각국의 탐지·평가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대한민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은 철통 같다”며 “핵을 포함해 모든 범주의 방어 역량으로 뒷받침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한·미 국방장관은 지난 3일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매년 핵우산 훈련을 실시하고, 미국 전략자산도 한반도에 상시 배치하는 수준으로 전개하기로 합의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상 만남을 통해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날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별도의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이 어떤 형태로든 핵을 사용한다면 한미 양국이 ‘모든 가용 수단을 활용해 압도적인 힘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1일(현지 시각) 캄보디아로 가는 에어포스원 기내 브리핑에서 “만약 북한이 계속해서 이 길(도발)을 간다면 그것은 역내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설리번 보좌관이 언급한 ‘역내 국방력 강화’와 관련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와 관련해 더 적극적인 조치를 할 것이란 얘기”라고 했다.

한·미·일 정상은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전선을 구축하기로 한다는 데도 뜻을 같이했다. 중국이 핵심 광물 등을 전략 자원화해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하는 등의 행위에 함께 보조를 맞춰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3국 정상은 한·미·일 ‘경제안보대화체’ 신설에 합의했다. 이들은 “역내와 전 세계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기술 리더십을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연대할 것”이라며 “경제적 강압에 함께 대항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안전하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 보장, 신뢰에 기반한 데이터의 자유로운 흐름 증진, 핵심 기술과 신흥 기술 관련 협력 강화, 핵심 광물의 다양한 공급망 강화 등을 함께 언급했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통한 긴밀한 협력도 약속했다. 3국 정상은 “자유롭고, 개방되며 포용적이고, 회복력 있으며 안전한 인도-태평양을 추구하는 데 있어 연대하자는 데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대만해협 문제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방안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개하면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용인할 수 없다”며 중국 팽창을 견제하는 미국과 보조를 맞췄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가장 먼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윤 대통령은 “안타깝고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따뜻한 위로의 말씀에 감사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