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미들버그에서 열린 최종현학술원의‘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에 참석한 한·미·일 3국의 전·현직 고위 관료와 학계·재계 인사들이 3국 협력 제도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단 왼쪽부터 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 토머스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전략국장,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 화면 속 인물은 왼쪽부터 존 햄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 후지사키 이치로 나카소네 평화연구소 이사장, 김성환 전 장관이다. /최종현학술원

최종현학술원이 5일(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미들버그에서 개최한 제2회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rans-Pacific Dialogue·TPD)’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된 것은 한·미·일 3국 협력 강화 방안이었다. 조태용 주미 대사, 조셉 윤 미 대통령 특사(태평양 도서국 담당), 도미타 고지 주미 일본대사 등 3국 정부 고위층 인사를 비롯, 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 척 헤이글 전 미 국방장관, 스기야마 신스케 전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 등 50여 명이 한·미·일 협력의 제도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은 “한국 정부의 새로운 외교 정책 방향이 신속하게 뿌리내리고 제도화해야 한다”며 “한·미·일 3국 국방장관 회의와 국방·외교장관 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것은 2+2+2로 상호 신뢰를 강화하고, 3자 간 정책 조율을 가능하게 하며 안보 위협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도 “한일 양국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한·미·일 3국 간 외교+국방장관회의를 구축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2+2회의는 양국의 외교·국방장관이 동시에 모여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시스템을 뜻하는데, 한·미·일 3국의 외교·국방장관 6명이 동시에 모여서 대북 문제 등을 논의하자는 제안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현재 한미, 미일 양국 간에 2+2회의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일 간에는 2+2회의가 없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 영상을 통해 참석한 마쓰가와 루이 일본 참의원 의원은 “(한·미·일 협력의) 제도화는 정말 중요하다”며 “한국의 구상처럼 한·미·일 3국 간 2+2+2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일 3국 간 국방+외교장관 회의는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관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조셉 윤 특사는 회의 후, “미국에서도 3국이 외교+국방 회의를 하는 아이디어를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TPD에서 나온 제안대로 한·미·일 3국 간 외교+국방장관회의가 개최되면, 자연스럽게 한일 간 2+2회의가 열릴 가능성이 커져 양국 관계가 더 긴밀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TPD 참석자들은 “한·미·일 3국이 협력하지 않으면 북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한일 간에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왜 양국이 과거사로 갈등해야 하느냐”며 다양한 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후지사키 이치로 나카소네 평화연구소 이사장(전 주미 일본대사)은 “마치 미국이 유럽 국가들을 설득해 일본이 1960년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수 있게 도와준 것처럼, 일본은 한국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회원국이 될 수 있도록 초청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윤영관 전 장관은 “한국이 CPTPP에 가입하도록 일본이 도와줘야 한다는 말을 들어서 기쁘다. 한국이 주요 7국(G7)에 가입하려 할 때도 일본이 전적으로 지지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날 회의장 안팎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는 데 대해 일본 측 참석자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발언이 수차례 나왔다.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교수, 사카다 야스오 일본 간다외어대 교수 등은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전략국장은 윤석열 정부가 인·태 지역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고 하면서 한·미·일 3자 협력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일 3국이 북한뿐만 아니라 대만 문제 등 인·태 지역의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협력을 확대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며 공급망, 첨단 기술, 반도체 정책 등이 3국 협력에서 잠재력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최종현학술원 이사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날 환영사에서 “우리는 한일 관계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며 “작년에 TPD에서 공급망, 경제 안보에 대해 논의했던 것처럼 미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회의 중간에 기자들을 만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미·일 3국이 서로 협력하기 좋은 기반에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과거보다) 낫다 아니다가 아니라 (협력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했다.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종현학술원에서 지난해 출범시킨 한·미·일 3국 현인(賢人) 회의. 한국·미국·일본의 전·현직 고위 관료와 학계·재계 인사들이 모여 동북아·태평양 지역의 지정학적 현안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집단 지성 플랫폼을 지향한다. 첫날 일부 회의만 공개하고,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