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지낸 문정인(71)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30일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우려스러운 변화(fraught shift)”라고 했다. 그는 “한국은 최대 교역국인 중국을 적대시(antagonize)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스탠스가 향후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대한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했다.

문 이사장은 30일(현지 시각) 아시아타임스에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태평양으로의 우려스러운 변화’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해 이같이 밝혔다. 올해 11월 문 이사장이 북경 향산 포럼에서 연설한 내용인데 아시아타임스는 “저자 동의를 거쳐 다시 게재한다”고 밝혔다. 문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 때 외교부 리더십의 주류를 이뤘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 이른바 ‘연정 라인’의 좌장 격인 인물이다. 한 때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가정 교사’로도 불렸던 그가 윤석열 정부 외교 정책 독트린(doctrine)인 인·태 전략을 직격한 것이다.

문 이사장은 “워싱턴(미국)이 중국을 둘러싸기(encircle)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용하고 쿼드(Quad·다자 안보 협의체),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 간 안보 동맹) 등과 협력할 것을 압박했다”며 “미국이 가장 중요한 동맹은 맞지만 한국은 중국을 적대시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했다. 중국이 우리 무역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인 점을 들어 “완벽하게 디커플링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문 이사장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 반도체 산업 견제를 위해 한국·일본·대만과 추진하고 있는 ‘칩4(fab four)’ 협의체에 대해서도 “한국의 주요 반도체 회사들이 수출하는 제품의 60%가 중국(홍콩 포함)으로 가고 반도체 관련 핵심 원료 60%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며 “중국을 쉽게 버릴 수(discard)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28일 외교부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설명회에서 주한 외교단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가 인·태 전략을 통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유사입장국’들과의 협력·연대 강화를 공언한 것에 대해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자유 연합(liberal coalition)’에 들어갔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며 “이러한 자세(stance)는 향후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려스럽다(worrisome)”고 했다. 정부가 인·태 전략을 발표하며 다른 서방 국가들과 달리 중국에 대해서도 “주요한 협력 국가”라고 명시했지만, 우리가 천명한 원칙들이 향후 한중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강조하고 있는 이른바 ‘글로벌 중추국가(GPS)’ 구상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문 이사장은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과 함의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포용, 협력, 안정을 강조하는 ‘아시아·태평양’ 컨셉을 재평가(revalue)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인도·태평양이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적극 차용한 개념인만큼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같이 기존에 작동하고 있는 메커니즘을 활용해 역내 다자주의 복원에 더 집중하자는 것이다. 문 이사장은 “문명의 충돌을 방지해야 할 중요성에 대해 정말로 강조하고 싶다”며 “두개의 블록에 대한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키는 행위야 말로 최악”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