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기업인이 “계급이 낮고 큰 전투 성과가 없더라도 미국의 6·25 참전 용사는 모두 우리의 영웅”이라며 ‘이름 없는 영웅’을 위한 책을 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지난해 6월 8억원을 기부한 사실이 19일 뒤늦게 알려졌다. 이 기업인은 “이름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기업 홍보용이라는 오해를 피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바람이었던 책은 최근 ‘역사를 바꾼 젊은 영웅들’이란 이름으로 출간됐다. 기부를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한 대한민국해양연맹은 “앞으로 다수의 책이 시리즈로 발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Arthur Vallere_아서 밸리에르

해양연맹 등에 따르면, 국내 한 중견회사 회장인 A씨는 지난해 5월 미국을 방문해 6·25 참전 용사를 만난 뒤 무명 용사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해양연맹에 8억원을 기부하며 “참전한 미국 용사만 180만명일 정도로 많은데 그동안 주요 지휘관이나 큰 전공을 세운 이들만 조명받은 것이 아쉽다. 이역만리 태평양을 건너 이름 모르던 나라 한국을 위해 젊은 시절을 바친 용사라면 이등병이든 장군이든 모두가 우리의 영웅”이라며 이들을 위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특히 참전용사 대부분이 90세 이상 고령으로 시간이 별로 없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이들을 만나 참전 경험을 듣고 이들 모습을 찍어 책에 담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해양연맹은 기부금을 받자마자 미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작가 등을 섭외해 미 전역을 돌며 ‘이름 없는 영웅’을 찾아다니는 ‘작전’에 돌입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낮은 계급의 참전 용사들이지만 6·25 내내 용감하게 싸웠던 이들이다. 해양연맹은 100세 안팎의 이들 용사들을 인터뷰해 참전 당시뿐만 아니라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기록했다. 이들의 전후(戰後) 일상이 어떠했는지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출간된 ‘역사를 바꾼 젊은 영웅들’에는 치열한 전투 경험담은 별로 없다. 대신 버려진 한국 아이를 입양해 키운 미 2사단 탱크 운전병 레너드 베른하드(91) 병장 이야기, 17살 때 보병으로 참전한 뒤 소시지 공장 등을 전전하며 살다 한국에서 ‘영웅’으로 초청해줘 크게 감동했다는 아서 밸리에르(89) 하사 등의 증언이 담겼다.

합참의장 출신인 최윤희 해양연맹 총재는 “한미동맹 70주년인 올해 이 같은 책이 출간돼 더욱 뜻깊다”면서 “앞으로 독지가의 뜻에 따라 ‘이름 없는 영웅’ 수기를 미국에 이어 다른 참전국에서도 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