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교수였지만 그 이전에 육군 대령이었다. 군(軍)의 미흡함을 지적하면 후배들은 반발한다.

“선배님은 잘했느냐?”

우리 때도 미흡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처럼 말만 앞세우거나 정치의 눈치를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필자도 국방부 대북정책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햇볕정책’에 순응하지 못해 보직해임되었고, 그래서 장군으로의 진급도 포기해야 했다. 군은 현 수뇌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계속 발전시켜나가야 할 국민의 군대이다. 선배와 국민의 입장에서 군의 변화를 촉구하고자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7월 6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북한은 2022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하여 남한을 “의심할 바 없는 우리의 명백한 적”이라고 규정한 뒤 ‘2023년도 핵무력 및 국방발전의 변혁적 전략’을 천명하였다. 김정은은 남한 적화통일을 의미하는 ‘제2의 사명’을 강조하면서 남한 공격용 전술핵무기의 대량 생산을 발표하였다. 특히 그는 “핵무력의 제2의 사명은 분명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고 하여 핵무기의 선제적(先制的) 사용을 강조하였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9월 8일 김정은이 결심만 하면 언제든 핵무기 사용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김정은은 2022년 마지막 날과 2023년 새해 첫날에 저고도로 남한 전역에 대한 핵공격이 가능한 대형 방사포(放射砲) 3발과 1발을 발사함으로써 남한에 경고하였다. 그 미사일이 핵탄두를 장착하여 남한 쪽으로 향할 경우 한국은 마땅한 방어책이 없다.

그러자 2023년 1일 1일 윤석열 대통령은 군 수뇌부와의 화상통화를 통하여 “일전(一戰)을 불사(不辭)한다는 결기로 적의 어떠한 도발도 확실하게 응징”할 것을 주문했다. 국방부는 “북한이 만일 핵사용을 기도한다면 김정은 정권은 종말에 처하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 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군에 묻고자 한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의 일전은 핵전쟁을 의미하는데, 핵전쟁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 군은 북한 정권을 절멸시킬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갖고 있다는 것인가?

북한의 핵위협은 실체가 있지만, 우리 군의 대응태세는 아직 실체가 없는 말뿐이다. 5년 동안 정부의 눈치만 보면서 아무런 대비 조치를 강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 수뇌부들은 “예의주시” “단호한 대응” “철저한 응징”과 같은 용감한 수사(修辭)로 당시 상황을 모면하는 데 치중했었고, 이 행태는 아직도 바뀌고 있지 않다.

군대의 가장 근본적 임무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사나 과장된 결기만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북핵 위협은 너무나 심각해졌다. 북한에 대한 정보 수집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아무도 북의 핵 규모를 제대로 알 수는 없다. 그런데 한국의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의 랜드연구소가 공동으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2020년에 이미 67~116개의 핵무기를 보유했고, 매년 12~18개를 생산할 수 있으며, 2027년에는 151~242개까지 증산할 것이라고 한다. 북한은 미국 본토 공격이 가능한 화성-15·16·17 등의 대륙간탄도탄(ICBM)과 북극성-3·4·5 등의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을 만들었고, 이것들을 계속 개량해나가고 있다.

북한의 의도는 명확하다.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고자 약속된 핵확장억제(nuclear extended deterrence)-다른 말로는 핵우산(nuclear umbrella)- 개념에 근거하여 핵보복을 시도하면, 뉴욕을 포함한 미국의 수 개 도시를 핵무기로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북한 자신의 초토화와 미국 뉴욕의 초토화를 바꾸자고 위협할 경우 잃을 것이 많은 미국은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이것이 김정은이 말하는 ‘제1의 사명’이다.

북한은 미국의 핵우산만 무력화(無力化)되면 한국은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결합하여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금방 정복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것이 ‘7일 전쟁’의 개념이다. 한국에 대한 핵공격을 위하여 북한은 미사일방어망을 회피하면서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KN-23·24·25와 저고도 대형 방사포 등을 개발하였다. 김정은은 지난해 9~10월 대남 핵공격 임무를 부여받은 미사일부대의 훈련을 직접 지도했고, 그중 한 발을 울릉도 코앞에 낙하시키기도 했다. 12월에는 무인기를 보내어 서울과 서부 지역 상공을 정찰하기도 했다.

북핵 위협보다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군의 미흡한 대비 태세이다. 아직도 2013년 수립된 ‘한국형 3축체계’, 즉 선제타격(Kill Chain), 미사일방어(KAMD), 대규모 응징보복확장억제(KMPR)만을 되뇔 뿐 강화된 북핵 위협에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복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설명해보라. 우리 군의 북핵대응 전략은 무엇인가? ‘한미연합’이라는 말은 미군에만 의존하겠다는 것 아닌가? 북한의 KN-23·24·25, 대형 방사포를 무엇으로 대응한다는 것인가? ‘참수(斬首) 작전’을 수행하겠다고 하는데, 김정은의 동선(動線)을 실시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나 수단이 있는가? 핵전쟁 상황하에서도 전투 수행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전 정부 동안 군은 북한에 대한 굴종과 외교적 비핵화(非核化)를 주창하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북핵에 대한 대비를 미뤄왔다. 북핵을 북핵이라고 하지 못하고 ‘WMD(Weapons of Mass Destruction·대량살상무기)’라고 영어로 불렀다. 북한이 수십 개의 핵무기를 만든 상황임에도 《국방백서》에서는 북한이 “플루토늄 50여 kg 고농축 우라늄(HEU) 상당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반복하고 있다. 북핵 위협은 미군이 담당하는 양 행동했다.

북핵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도 군은 정치권의 요구에 순응하여 한미연합사의 해체 또는 무력화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전시(戰時) 작전통제권 환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휴전선 근처에서의 군사 활동이나 정찰 활동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내용의 군사합의를 곧 교체될 국방장관이 평양까지 가서 천연덕스럽게 서명하고 왔다. 그 결과 철원 지역에 유해 발굴 명분으로 비무장지대에 1.9km에 걸쳐 12m 폭의 도로까지 개설하여 북한에 접근로를 개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핵 위협 대응에는 별로 기여하지도 못하지만 천문학적인 국방예산을 소모할 경항모와 핵잠수함 건조 사업을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추진하였다.

이전 정부의 군 수뇌부들은 확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정예의 군대라면서 미군도 부러워했던 한국군을 순한 양으로 만들었다. 훈련보다는 병사들의 복지에만 신경을 썼고, 간부들은 군인정신이나 전투의지를 강조하기보다는 부대관리 및 사고예방에만 몰두하였다. ‘선(先)조치 후(後)보고’라는 군대의 원칙이 사라지고, “쏠까요, 말까요?” 물어보는 문화가 정착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전력을 강화해왔고, 따라서 북핵 수준과 한국군의 대비 태세에는 상당한 격차가 발생하고 말았다.

다행히 현 정부는 물론이고 현재의 군 수뇌부들은 북핵의 심각성은 물론이고, 국민의 걱정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5년 동안 무사안일(無事安逸)이 습성화된 군대라서 마음과 말만 앞설 뿐이다. 북핵대응을 중심으로 근본적인 변혁을 추진해야 할 상황이지만, 여전히 점잖게 접근하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대통령이 지시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간부들은 사명감이 아닌 ‘진급’이라는 개인적 목표로 열심히 노력하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 군의 문제점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첫째, 한국의 명운(命運)을 위협하고 있는 북핵 위협에 대하여 한국군 나름의 북핵대응 전략과 노력이 아직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한국의 핵무장, 미국 핵무기의 전진배치와 공유, ‘4축체계 + α’와 같은 방안을 제안하고 있으나, 군은 이를 경청하거나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 않다. 미국의 핵우산만 보장되면 된다면서 미 측으로부터 “적시적이고 조율된 미 전략자산 전개”라는 합의를 도출한 것을 자랑할 뿐이다. 군 수뇌부는 “한미연합 대응”만 금과옥조처럼 되뇌고, 미국 항공모함에 올라가서 북한에 경고한다.

북한이 고체연료, 요격 회피기술, 저고도 미사일들을 확보함에 따라서 선제타격과 미사일 방어의 효과가 급격히 저하되었다면, 자체 응징보복(KMPR)에 집중하면서 ‘4축’으로 제안된 사이버전 및 전자전 능력을 강화하는 등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군은 기존의 ‘3축(軸)’ 역량 강화 차원에서 F-35 20대 추가 증강이나 미사일 전력 강화에만 치중하고 있다.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수뇌부에 대한 참수 작전 보장에 필수적인 고성능의 정찰 능력 강화, 첨단 신무기 개발, 사이버전 능력 보강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군 수뇌부가 북핵대응에 필요한 새로운 지침을 내리기보다 결기만 강조하고 있으니, 실무자들은 관행대로 예산을 편성할 뿐이다. 현재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 중에서 북한과 “일전불사”하거나 “북한 정권의 종말”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것인가?

둘째, 군인들의 전투의지와 사명감도 제대로 강화되고 있지 않다. 얼마 전 북한 무인기 침투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군의 경계 및 대비 태세는 불안하다. 북핵 문제를 활발하게 토론하거나 군사서적을 탐독하는 간부들은 찾아보기 어렵고, 군사학교에서조차 핵전략을 제대로 학습시키고 있지 않다.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지만 군의 전투준비 태세는 높아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북한은 핵무기와 화학무기를 사용하여 한국의 전방부대를 조기에 돌파한 후 수도 서울을 순식간에 점령할 수 있다. 이후에 협상을 제의하여 시간을 끌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한 사례처럼 형식적인 투표 후 서울을 병합했다고 발표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전방에서 북한의 기습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따라서 한국군의 전방부대 진지들은 핵과 화학무기 공격을 견딜 수 있도록 보강되어야 하고, 한국군은 핵상황에서도 전투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우리 군이 이러한 상황까지 가정하여 대비하고 있는가?

셋째, 북핵 위협 이외에도 군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현 군 수뇌부들이 충분히 고민하는 것 같지 않다. 예를 들면, 당장 급격한 인구감소와 출산율 저하(2021년 합계출산율 0.81, 2022년의 경우 0.75로 예상)로 50만 명 수준의 한국군 상비 병력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만 20세 남성 인구는 2025년 23만7000여 명이고, 2041년에는 12만8000여 명 수준으로 감소한다는 예상이다. 병사들의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이고, 봉급을 200만원으로 인상하고 있는 상황이라 우수인력이 ROTC를 비롯한 장교 및 부사관을 지원하기 어렵다. 군 수뇌부들은 복무기간의 연장을 건의하든가, 예비군제도를 확충하든가 등의 조치를 시급하게 강구해야 하는데 아직 이러한 조치는 없다. 이 외에도 군은 군의 미래지향적 발전방향 정립, 현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작전술과 전술의 발전, 현대적 기술의 적극적 군사적 활용, 군 경영의 합리화 및 효율화, 권위주의적 군대 문화의 개선, 간부들의 전문성 강화, 병사들의 실전적 훈련 강화 등 이전 정부에서 소홀했던 모든 분야를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현 군 수뇌부들이 이를 고민하느라 밤잠을 자지 못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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