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 경찰 이관과 관련해 정부가 국정원에 수사 지원단을 만들고 전직 대공·방첩 요원을 특채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때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도록 개정한 국정원법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감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대공 수사 역량 저하를 막자는 취지다.

국정원 로고./이덕훈 기자

여권 핵심 관계자는 “개정 국정원법이 그대로 시행돼 대공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간다면 국정원 안에 수사를 지원하는 별도 조직을 만들어 경찰·검찰과 3각 공조할 수 있도록 하고, 전직 대공·방첩 분야 요원을 특채 형식으로 채용해 국정원의 수사 역량과 노하우를 보존하는 방안이 정부 내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행 국정원법에 따르면, 내년부터 대공 수사권은 경찰로 넘어가지만 국정원은 내란·외환·반란죄, 국가보안법 위반죄와 관련된 안보 침해 행위에 대한 정보를 수집·작성·배포하는 직무는 계속 수행할 수 있다.

여권 관계자는 “대공 수사는 관련 정보 수집과 분리될 수 없고, 주요 간첩 사건 관련자들이 해외를 거점으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지령을 받는 상황에서 해외 첩보망을 갖고 있고 해당국 정보기관과 협조가 가능한 국정원의 역량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전날 국민의힘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대공 수사는 해외 수사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국내 경찰이 전담하는 부분에 대해 살펴봐야 할 여지가 있다”며 보완책 마련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난 정부 때 국정원을 떠난 전직 대공 요원 일부를 특채 형식으로 복귀시켜 수사 지원단에 배치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원에 대공 수사 지원단을 신설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은 21대 국회에선 국정원이 계속 대공 수사권을 갖도록 국정원법을 재개정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12월 대공 수사권 경찰 이관을 골자로 한 국정원법 개정안을 국민의힘 반대 속에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런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21대 국회에서 국정원법 재개정에 동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일단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공 수사권과 관련한 국정원법 재개정 문제가 내년 4월 총선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통화에서 “내년 1월부로 대공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는 데 수십 년간 축적된 국정원의 간첩 수사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도록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대공 수사권 강화를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경찰이 (대공) 수사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조직인지, 능력이나 전문성이 있는지, 외국 정보기관과의 협력 문제나 해외 수사 인력 확보 등을 국회 정보위원회를 중심으로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일단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국정원의 축적된 수사 역량을 보존하면서 내년 4월 총선 때 국민의 판단을 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반발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국정원을 활용해 노동조합 사무실을 요란하게 압수 수색하더니, 기어이 대공 수사권까지 되돌리겠다는 음험한 속내까지 드러낸 것”이라며 “‘검찰 독재’ 윤석열차의 역주행은 국정원마저 70년대 공안 정국의 시간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당장 국정원법을 개정할 수 없으니, 경찰이 주로 수사를 하되 검찰과 국정원이 합동 수사팀을 꾸린다’고 했다”며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넘겨준다고 하더라도 국정원이 수사를 지휘하는 괴이한 체제가 탄생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