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있어요!”

9일 오전(현지시간) 튀르키예 하타이 안타키아 일대에서 한국긴급구호대(KDRT) 대원들이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속에 갇혀 있던 어린이와 시민들을 구조하고 있다. 2023.2.9 /연합뉴스

9일 오전 6시 37분(현지 시각) 튀르키예 강진 피해 지역인 하타이주 안타키아 일대에서 활동 중인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가 70대 남성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8일 현지에 급파돼 다음 날 오전 5시부터 구호 활동에 돌입한 지 100분 만에 생명을 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노인은 의식이 비교적 또렷한 상태로 건강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구호대는 같은 장소에서 시신 4구도 추가로 수습했다. 몇 시간 뒤엔 40세 남성과 2세 여아, 35세 여성, 10세 여아 등을 구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첫날에만 5명을 구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강진이 발생한 튀르키예에 파견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가 9일 첫 생존자를 구조했다. /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

외교부는 이날 “대한민국 긴급구호대가 8일 튀르키예 측 요청에 따라 동남부 지역 하타이주 안타키아를 구조 활동 지역으로 선정해 9일부터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고 했다. 정부 파견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이번 긴급구호대는 구호대장인 원도연 외교부 개발협력국장을 비롯한 국방부 49명, 소방청 62명, 한국국제개발협력단(KOICA) 직원 6명 등 총 118명으로 구성됐다. 당초 60여 명 수준으로 검토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가 있고 나서 인원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전사 등 대다수가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탐색·구조 인원들 중심으로 꾸려진 것이 특징이다.

8일 오전 1시 인천에서 공군 수송기를 타고 이륙한 구호대는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하타이주 지역 내 셀림 아나돌루 고등학교 운동장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했다. 가지안테프주의 진앙에서 직선 거리로 130㎞ 떨어진 곳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에 가장 피해가 막심하고 구조대 활동이 절실한 지역”이라며 “튀르키예 측에서 전문성을 갖춘 대규모 구조대의 활동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고 했다. 구호대는 이달 18일까지 열흘 동안 활동할 예정이지만, 외교부 관계자는 “현지 구조 활동 상황을 지켜보면서 2진과 교대하거나 구조 인원을 추가로 파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AFP 등 외신들은 9일 기준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사망자가 1만71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현지 전문가들은 튀르키예에서만 최대 20만명의 시민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인명 구조의 ‘골든 타임’이라 여겨지는 72시간을 넘긴 터라 희생자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시리아에서는 당국과 반군 측 구조대 ‘하얀 헬멧’이 밝힌 것을 합친 사망자가 3162명이다. 두 국가를 합친 사망자가 1만7176명으로 1만8500명이 사망한 동일본 대지진 때 수치에 근접하고 있다. 튀르키예의 대표적 지진 과학자인 오브군 아흐메트는 “세계는 이런 재난을 본 적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구호대가 생존자들을 구조한 현장은 베이스캠프 인근에 있는 한 고등학교 건물 일대다. 주황색 구조복에 빨간색 헬멧을 착용한 우리 구호대원들이 ‘살려달라’는 생존자의 소리를 듣고 나서 곧바로 통로를 만들어 구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구조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했다”며 “(대원들에게) 튀르키예가 우리의 혈맹이고 따뜻한 형제애가 잘 전달되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 당부했다”고 전했다.

尹대통령, 튀르키예 대사관 찾아가 위로 - 윤석열(오른쪽) 대통령이 9일 서울 중구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을 방문해 살리 무랏 타메르 대사의 손을 잡고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튀르키예 국민이 좌절과 슬픔을 극복하고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나라가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했다. /대통령실

외교부 관계자는 “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전시(戰時) 같은 상황이지만 건물 잔해 속 생존자를 구조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며 “조금이라도 빠른 시일 내에 구조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현재 수색 인력이 자체적으로 조를 편성해 인근 지역에 분산 투입됐다고 한다. 본격적인 구호 활동이 시작된 만큼 생존자 구조 소식이 잇따를 것으로 기대된다. 현지에서도 우리 기업과 교민, 시민 단체들이 자체적인 성금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고 이재민들에게 생필품을 지원할 예정이다. 안타키아 정부 관계자는 우리 측에 “한국 구조대가 빠른 성과를 내게 돼 기쁘다” “생존자가 계속 나왔으면 한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런 가운데 첫 구조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번에 파견된 구호대 면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방부는 육군특수전사령부와 국군의무사령부 장병 50여 명을 파견했는데, 코로나 위기 때 방역 최일선에서 투혼을 발휘한 의무 장교 김혜주 육군 대위도 여기에 포함됐다. 김 대위는 2020년 코로나 위기가 고조된 대구에서 장시간 방호복 마스크를 착용해 헐어버린 콧등에 반창고를 붙였는데 이 ‘콧등 밴드’ 사진이 소셜미디어(SNS)를 타고 퍼지면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 외에 아프가니스탄·청해 부대 파견 경험이 있는 김동훈 국군수도병원 중환자실장(육군 중령),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이란·아프리카 교민 귀국 지원 임무를 수행한 김정길 국군양주병원 진료부장(육군 중령) 등도 힘을 보탠다.

한편 국내에서도 튀르키예 추가 지원을 위한 여러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날 윤 대통령을 포함한 전 직원이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역 피해자를 돕기 위한 ‘대국민 모금 캠페인’에 동참해 3261만원의 성금을 대한적십자사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직원들도 성금 3000만원을 대한적십자사에 전달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을 찾아 살리 무랏 대사를 위로했다. 또 한덕수 총리는 “형제 국가와도 같은 튀르키예의 아픔에 우리가 앞장서서 손을 내미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며 “추가 지원이 필요할 경우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8일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튀르키예 외교장관과 전화 통화를 갖고 “우리 국민은 한마음으로 튀르키예를 응원하고 있다”며 “조속한 피해 복구를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또 이도훈 2차관이 남아공 출장 도중 중도 귀국해 9일 오후 ‘튀르키예 지진 피해 관련 긴급구호본부’ 회의를 주재했다. 임수석 대변인은 “효과적으로 정부와 민간 차원의 지진 피해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