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6일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에 대한 공식 해법을 밝혔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조성한 재원으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에게 약 40억원을 일본 피고 기업 대신 우선 변제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식이다. 일본 기업의 참여는 문을 열어놓고 추후 외교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이로써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악화일로였던 한일관계가 4년 4개월 만에 정상화 수순을 밟게될 것으로 보인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전 외교부 청사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함께 한일 양국이 지역 및 세계 평화번영을 위해 노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같이 밝혔다. 박 장관은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분들께서 오랜 기간 동안 겪으신 고통과 아픔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며 “고령의 피해자 및 유족분들의 아픔과 상처가 조속히 치유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박 장관은 이번 해법에서 일본 기업의 기여가 제한된 점을 들어 ‘반쪽 짜리’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물컵에 비유하면 물의 절반이 찼다고 생각한다”며 “일본의 호응에 따라 나머지 물컵이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새로운 사죄 표명 없이 기존 담화를 계승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새로운 사죄를 받는게 능사는 아니라 생각한다”며 “강제징용 포함 식민지배 전체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을 계승해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제3자 변제는 일본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을 대신해 재단이 우선 원고에게 판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당장 지연이자 등을 합쳐 약 4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포스코·KT&G·한국전력 등 대일 청구권 자금 수혜 기업 16곳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정부·기업이 2018년 대법원 판결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 한일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고육지책을 짜낸 측면이 있다. 외교부는 “추후에라도 일본 기업들이 기여할 수 있게 문을 열어놓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한일의 대표적 경제단체인 전경련과 게이단렌이 공동으로 청년 교류를 위한 기금 조성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이날 조속한 해법을 마련한 배경으로 강제 징용 피해자 대부분이 90대 고령이고, 상당수 유가족들이 소송 장기화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조속한 해결을 희망하는 상황을 언급했다. 또 2018년 이후 한일관계 경색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엄중한 국제정세 하에 한·미, 한·미·일 간 전략적 공조 강화가 공동의 이익에 부합함에도 불구하고 협력 기회를 상실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외교가에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부상 등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삼각(三角) 공조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큰 상황이다.
외교부는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격과 국력에 걸맞는 대승적 결단”이라고 자평하며 “장기간 경색된 한일관계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갈등과 반목을 넘어 미래로 가는 역사적인 기회의 창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또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며 과거를 기억하는 새로운 노력을 추진하겠다”며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닌 진정한 시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재단이 피해자들을 접촉해 판결금 지급을 위한 후속 조치를 하는 한편 피해자 추모를 위한 교육·조사·연구 사업 내실화도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정부 공식 발표 전부터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일부 피해자 및 지원단체들이 반발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응이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