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6일 정부의 일제 징용 피해자 배상 방안 발표를 계기로 16~17일 방일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라고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일본이 윤 대통령을 초청했다. 정부는 또 윤 대통령이 오는 4월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한·미·일 3자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 발표를 계기로 한일 관계 정상화에 시동을 걸고, 이어 한미, 한·미·일 연쇄 정상회담을 통해 3국 협력 공간을 넓히겠다는 구상에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와 주례 회동에서 “한일 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미래 세대가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며 “여러 어려움 속에서 강제징용 판결 문제의 해법을 발표한 건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결단”이라고 했다. 강제징용 해법 발표를 계기로 한일 관계 정상화에 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에 맞춰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 공동 이익을 추구하면서 지역과 세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011년 이후 한일 정상이 양국을 오고 간 게 중단된 지 12년째인 만큼 이 문제를 양국이 주시하고 있다”면서 윤 대통령의 ‘3월 방일’ 가능성에 대해 “논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했다. 외교 소식통은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한일 정부가 각자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양국 정상이 만나 정치적 타결을 짓는 게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해 필수적”이라며 “일본 국내 정치 일정 등을 고려할 때 다음 주 중후반이 방일 적기라고 보고 양국이 물밑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일본 정부도 주(駐)한국 대사관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 부부의 관심사 등을 조사하는 등 방일 준비 움직임이 포착됐다.
윤 대통령이 4월 방미를 전후해 각각 한일, 한·미·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은 한국이 직면한 군사·경제 안보 문제를 극복하려면 한·미·일 3국 협력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북한이 핵·미사일 기술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고, 미·중 패권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경제도 위기를 맞고 있다. 정치적 손해를 보더라도 한일 및 한·미·일 협력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판단도 이 때문이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한국은 우리 힘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를 통한 한·미·일 협력 강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강제징용 문제에서 윤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결단한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중국·러시아·북한에 맞서기 위해 동북아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를 바라는 상황에서, 한·미·일 협력 강화로 가려면 한일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란 것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들 간 협력과 파트너십의 획기적인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한일 지도자들의 이러한 조치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며 “앞으로 나아가며 한국, 일본, 미국 3국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이런 분위기에 맞춰 5월 일본 히로시마 G7 회의에 윤 대통령이 초청을 받아 참석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을 방문 중인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5일(현지 시각) 워싱턴DC에 도착해 “한일 새 시대가 열리면 한·미·일 안보 협력도 업그레이드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