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음 주 일본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을 일본과 조율하면서 1963년 프랑스와 독일이 적대 관계를 청산하며 맺었던 ‘엘리제 조약’을 중장기 한일 관계 정상화 모델로 검토하는 것으로 7일 알려졌다. 양국 정상과 외교·안보 장관 회동을 정례화하고 청년 등 민간교류 활성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의 이런 조율과는 별도로 양국 재계는 반도체·전기차 등 신(新)산업 분야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여권 핵심 관계자는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신협력관계로 나가기 위해 프랑스·독일의 화해 협력 조약인 엘리제 조약을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 양국 정상 간 선언이 상징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정상 간 셔틀방문 복원, 장·차관급 회동 정례화 및 청소년 교류 확대 등을 바탕으로 신뢰를 조성한 뒤 그 결과로 ‘신한일 관계 선언’까지 나가는 구상이다.
이런 맥락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다음 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정상 간 ‘셔틀 외교’ 복원에 더해 양국 외교·국방 장관 회담 정례화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4월 한미, 5월 한·미·일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외교·안보 장관 협력도 구체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일 양국 외교·안보 장관 회담 정례화는 미국도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기후·환경, 마약 범죄 등과 관련한 글로벌 협력 강화 방안도 한일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를 계기로 한일 양국 미래세대가 새 시대를 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과 일본국제협력단(자이카) 등을 활용한 청소년·청년 교류 활성화 방안이 양국 간에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기업이 참여하는 ‘미래청년기금(가칭)’ 조성에 양국 재계가 공감대를 이룬 상황에서 실질적인 교류 협력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양국은 학술 공동 연구나 대중문화 교류 확대 등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에 호응해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내놓은 입장을 두고 여권 내에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하야시 외무상의 반응은 실망스럽게 느껴진다”며 “일본 정부가 새 시대를 열어나가려면 미온적 태도를 버리고 훨씬 더 적극적인 호응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차원을 넘어 좀 더 진전된 입장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에 대한 상호 인식과 양국의 미래지향적 교류·협력 확대 방안 등을 담은 신한일관계 구축을 논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큰 틀에서 공감대를 이룰 경우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공동선언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신산업 분야에서 양국 기업이 공동 기술 개발에 나서는 등 전략적 파트너십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업 간에 물밑에서 추진 중인 신산업 분야 전략적 파트너십이 활성화하면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삼성과 일본의 소니, 전기차 분야에선 LG엔솔과 일본의 토요타·혼다의 협력이 가시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포스코와 일본제철 등 제철기업 간 기술 협력도 추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제 조약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제1·2차 세계대전 등으로 관계가 악화한 프랑스와 독일이 오랜 갈등 관계를 정리하고 우호를 다지기 위해 1963년 맺은 조약이다. 1958년 프랑스 드골 대통령과 서독 아데나워 총리가 처음 만난 이후 수차례 상호 방문 끝에 협약이 체결됐다. 협약에는 양국 정상 및 장관급의 정례 회담과 재단을 통한 청소년 교류 등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