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기업 800사가 가입해있는 암참(AMCHAM·주한미국상공회의소)이 8일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강제 징용 배상 문제 해법으로 ‘제3자 변제’를 공식화한 정부가 재단을 통한 판결금 재원 마련에 나선 가운데 한일 관계 개선에 공감하는 미국 기업들이 동참의 뜻을 밝힌 것이라 일본에도 적잖은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김 암참 회장은 이날 추경호 경제부총리 초청 간담회에서 “한국과 일본 정부가 발표한 역사적 합의를 환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한·미·일 3국 파트너십은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열쇠인데 중요한 관계를 진전시킨 한국 정부에 감사드린다”며 “획기적인 합의를 지원하기 위해 암참이 재단에 기부하고 회원사들의 지원도 독려할 것”이라고 했다. 1953년 설립된 암참에는 국내에 사업장이 있는 미국 기업 800여 개와 기업인 1500명이 가입해있다.
김 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기부를 통해 이번 합의에 미국도 100% 동의하고 돕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한일이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미국에도 중요하다”고 했다. 현재 각 회원사들과 자발적 기부를 위한 소통을 시작했고, 이번 주 논의를 거쳐 액수와 방법 등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재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환영한다”며 “한일 관계 개선에 뜻을 같이하는 일본 기업들의 참여도 기대한다”고 했다. 재단은 포스코 등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자금의 수혜를 입은 기업 16곳에서 자발적 기부를 받아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에게 약 40억원을 배상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와 별개로 한일을 대표하는 경제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은 윤석열 대통령의 다음 주 일본 방문에 맞춰 ‘미래청년기금(가칭)’ 조성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금은 한국인 유학생을 위한 장학금, 문화 탐방 등 양국 청년의 교류 증진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외교 소식통은 “도쿠라 마사카즈(十倉雅和) 회장을 비롯한 게이단렌 대표단이 방일 기간 윤 대통령과 별도로 면담을 갖고 면담 당일 기금의 규모와 취지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민간의 자발적 기부를 통한 한일 미래 세대 협력’이란 조성 취지를 설명한 이후 전경련·게이단렌의 구체적 발표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기금 액수는 한일 청년 교류를 획기적으로 활성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모을 계획이다.
현재 기금과 관련해 전경련과 게이단렌 간 논의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이고, 게이단렌이 조만간 회원사 1400여 곳을 상대로 기금 참여 절차를 안내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제 징용 배상 책임이 있는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은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제3자 변제’가 매듭지어진 후에야 직접 참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는 “일본이 배상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뜻있는 일본 일반 기업들의 기부는 ‘용인’하는 것으로 호응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있는 소재·금융 분야 일본 기업들이 참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