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2년 만의 한일 ‘셔틀 외교’ 복원을 알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문에 자위대 사열, 부부 동반 만찬같이 ‘국빈 방문(state visit)’에 준하는 예우를 했다. 만찬 후엔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128년 된 오므라이스집에서 한국 소주, 일본 맥주를 놓고 통역만 대동한 단독 친교 모임을 했다.
윤 대통령은 16일 오전 10시 공군 1호기를 타고 서울공항을 출발해 오전 11시 50분쯤 도쿄 하네다공항에 도착했다. 네이비색 정장에 붉은색 넥타이를 맨 윤 대통령, 연한 회색 코트와 흰 바지를 입은 김건희 여사를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와 다케이 슌스케 일본 외무성 부대신 등이 영접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실무 방문임에도 부대신이 영접을 나왔고 도심 교통을 통제하는 등 최고 수준의 경호로 예우를 표했다”고 했다. 재일동포 오찬 간담회 참석을 위해 시내로 가는 길엔 태극기를 든 교민들이 윤 대통령을 환영했다.
윤 대통령은 오후 4시 40분쯤 정상회담을 위해 도쿄 총리실에 도착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현관 앞까지 나와 있다가 차에서 내리는 윤 대통령을 맞이했다.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회담 이후 4개월 만에 대면한 한일 정상은 서로 밝은 얼굴로 악수한 뒤 관저 안으로 이동했다. 두 사람은 태극기·일장기가 나란히 게양된 단상에 올라 자위대 의장대를 사열했다. 우리 대통령이 일본 현지에서 자위대 의장대를 사열한 건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국빈 방문 이후 20년 만이다. 약 8분 동안 진행된 행사에서 군악대가 애국가·기미가요를 차례로 연주했는데, 윤 대통령은 태극기를 보고 가슴에 손을 올려 국기에 대한 예의를 표시하고 이어 목례를 했다. 두 정상은 상대국 국무위원들과도 악수한 뒤 회담장으로 이동했다.
한일 정상은 23분 동안 소수 인원이 참여하는 회담에 이어 61분 동안 확대 회담을 했다. 기시다 총리는 공개 발언에서 “이번 주 도쿄에 벚꽃이 벌써 개화(開花)했는데 봄을 맞이한 이 시점에 한일 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여러 현안으로 어려움을 겪던 한일 관계가 새롭게 출발한다는 것을 양국 국민들께 알려드린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화답했다.
환영 만찬은 오후 7시 40분부터 긴자에 있는 스키야키·샤부샤부 전문점 ‘요시자와(吉澤)’에서 열렸다. 1924년 정육점으로 시작한 곳이다. 만찬은 김 여사와 기시다 총리 배우자인 기시다 유코 여사도 배석해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기시다 총리 부부가 식당 앞에서 맞이했고, 네 사람이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대변인은 “일본 관례상 두 부부만 동반하는 만찬은 매우 드문 편”이라고 했다. 통상 실무 방문에선 총리 관저에서 관계자들이 배석한 채 총리가 주최하는 만찬을 실시했다. 짧은 시간 안에 친밀감을 높일 수 있도록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특별한 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한일 정상은 이후 약 300m 떨어진 긴자의 돈가스·오므라이스집 ‘렌가테이(煉瓦亭)’로 이동했다. 1895년 창업한 경양식집으로 윤 대통령이 일본에 왔을 때 꼭 가보고 싶다고 한 식당이다. 일본 언론은 “한일은 문화가 비슷한데, 1차는 제대로 된 가게에서 식사하고 2차는 익숙한 가게에서 가슴을 펴고 이야기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1시간 정도 진행된 2차 만찬에선 통역만 배석한 채 사실상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독대로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한일 양국이 처한 위기 극복과 공통의 이익을 위해 두 정상이 정말 잘해 보자”는 뜻을 나타냈고, 기시다 총리도 윤 대통령 뜻에 공감하면서 정상 간 신뢰와 우의를 위해 소통을 계속 이어가자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주한 일본대사관에 파견된 일본 검사들과의 소통 경험 등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