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6일 평양 순안에서 동해상으로 신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 추정 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서울 공항에서 도쿄로 출국하기 3시간 전 일본 쪽으로 고강도 도발을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출국 직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회의를 갖고 “무모한 도발은 분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한·미·일 안보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도쿄 숙소에 도착한 직후에도 현장에 설치된 상황실을 찾아 화상 회의를 열고 안보 상황을 점검했다.

합참은 이날 “북한이 오전 7시 10분쯤 평양 순안 일대에서 장거리탄도미사일 1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고 밝혔다. 미사일은 고각(高角) 발사돼 정점 고도 6000km까지 솟구치며 약 70분간 1000km쯤 비행하다 오전 8시 19분 일본 홋카이도 서쪽 약 2000km 지점에 떨어진 것으로 탐지됐다. 한반도에서 동쪽으로 약 550km 떨어진 곳이다. 합참 관계자는 “ICBM 화성-17형으로 추정된다”면서도 “탐지된 일부 정보에 특이점이 있어 한미 공조하에 정밀 분석 중에 있다”고 했다. 화성-17형은 크기가 세계 최대급이고 다탄두(多彈頭)를 장착할 수 있어 ‘괴물 ICBM’으로 불린다. 화성-17형 발사에 사실상 성공한 것은 작년 11월에 이어 두 번째다. 정상 각도(30~45도)로 발사하면 1만5000km 이상 비행할 수 있어 미 서부 요격망을 우회해 워싱턴 DC 등 미 동부 주요 도시까지 타격할 수 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한일 정상회담과 이를 계기로 한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에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면서 “북한이 한일 관계 회복, 한·미·일의 북한 미사일 방어 훈련 등을 트집 삼아 7차 핵실험과 ICBM 정상 각도 발사 등에 나설 수도 있다”고 했다.

한미 군 당국은 16일 북한의 ICBM 발사 움직임을 사전 포착하고 정찰·감시 활동을 강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 공군 정찰기 RC-135S 코브라볼도 북한 ICBM이 발사되던 오전 7시 10분 무렵 동해상을 비행하며 실시간으로 북한 도발 상황을 정찰했다. 전 세계에 3대밖에 없는 특수 정찰기인 코브라볼은 적외선 센서를 활용해 미사일 발사 징후를 원거리에서 포착하고, 발사된 미사일의 비행 궤적과 탄도 낙하 지점을 추적할 수 있다.

합참은 이번 도발이 한일 정상회담을 겨냥해 사전 기획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이번 ICBM 발사는 갑자기가 아니라 사전에 계획한 수순에 따라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이 지난 9일부터 2∼3일 간격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는데 오늘(16일)을 선택한 것은 윤 대통령의 방일을 노린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사 징후를 포착해 한미가 긴밀 공조하에 계속 동향을 추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달 9일 근거리탄도미사일(CRBM), 12일 잠수함발사 순항미사일(SLCM), 14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하며 도발 수위를 높이다가 윤 대통령 출국일을 택해 신형 ICBM을 쏘면서 도발 효과를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군 소식통은 “한미가 정보 자산과 통신 감청 등으로 이동식발사대(TEL) 이동 움직임, ICBM 액체 연료 주입 과정 등을 파악하고 있었다”며 “이런 동향을 종합할 때 북한이 한일 정상회담을 노려 도발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합참은 이날 ICBM이 신형 화성-17형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한편, 고체 연료 기반의 ICBM은 아닌 것으로 내부 평가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고체 연료 미사일은 액체 연료와 달리 사전 연료 주입 과정이 필요 없다.

화성-17형으로 추정되는 이번 ICBM을 정상 각도로 발사하면 미 본토 전역이 타격권이다. 북한의 ICBM 도발은 올해만 2회이고 지난해는 8회에 달했다. 북한은 화성-17형을 2010년 당 창건 기념식에 처음 등장시킨 이후 여러 차례 시험 발사를 시도하다 지난해 11월 발사 성공을 주장했다. 중국 베이징전자공정총체연구소의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가 요격에 실패할 경우 북한 ICBM이 미 본토 중부인 미주리주 소도시 컬럼비아를 타격하는 데는 33분밖에 걸리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ICBM을 쏜 것은 한일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한·미·일 안보 공조를 겨냥한 것”이라고 했다. 최근 북한은 핵탄두를 탑재해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신형 단거리미사일과 일본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미사일 및 순항미사일, 미국이 표적인 ICBM을 번갈아가며 쏘고 있다. 한·미·일은 이에 맞서 레이더 탐지 훈련 등을 강화하는 상황이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의 경제난이 날로 심해지는 상황에서 김정은은 내부 단속과 모종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도발 수위를 높이는 양상”이라며 “한·미·일 군사 공조가 더 절실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북한 ICBM 발사와 관련 “미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한다”며 “이번 발사는 복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