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총리가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한국을 초청한 배경에는 한일 관계 정상화는 물론 한·미·일 3국의 협력 공간을 지금보다 더 넓히겠다는 의미가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북한이 핵·미사일 기술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고, 미·중 패권 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경제도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한일 모두 3국 협력 강화가 필수적이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미국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나서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들 간 협력과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오는 4월 26일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한국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은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 3월 한일, 4월 한미 정상회담을 거쳐 5월 G7 기간 중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3각 협력 구도’를 완성시켜 나간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계획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6일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G7 회의에 초청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인도를 방문하는 길에 초청 방침을 공개하고 정식 초청장을 보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한일 관계 정상화에 시동을 건 상황에서 글로벌 이슈에서도 한일, 한·미·일 협력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일본을 방문한 윤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이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와 함께 이번에 G7 회의가 열리는 히로시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원폭으로 인해 우리 국민들도 피해를 봤던 곳이란 의미가 있다. 당시 히로시마에 살던 한국인 2만여 명이 사망했고, 부상 등 피해자는 총 5만여 명에 이른다. 히로시마는 기시다 총리의 고향이자 지역구이기도 하다. 외교 소식통은 “한·미·일이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3각 협력을 부각하는 모종의 결과물을 내놓을 가능성도 크다”고 했다. 일각에선 북핵에 대응할 한·미·일 간 확장억제(핵우산) 협의체가 출범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 기시다 총리는 올 하반기 한국을 방문해 윤 대통령이 재개한 ‘셔틀 외교’에 화답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G7 회원국들과 협의가 활발해지면 한국의 G8 가입 논의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지난 10일(현지 시각) “중·러의 위협에 맞서 G7 확장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세계 최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은 G7에 자리 잡을 자격이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며 “한일 관계 개선 및 협력에 대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각 부처는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후속 조치와 관련, “경제 산업 측면에서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서 협력할 부문이 많다”며 “이런 부문의 협력 강화 방안이 포함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이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를 더욱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대국들 사이에 둘러싸인 한국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외교적 줄타기가 필요한데, 너무 급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여전히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점에서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평가다. 민주당은 이날도 한일 정상회담 비판에 당력을 집중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대일 굴욕 외교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 국회가 강력한 조치에 나서야 한다”며 “민주당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망국적 야합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