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13년 전 ‘마침표’를 찍었지만, 이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과학수사 분과장을 지낸 윤종성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은 “사력을 다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혔으나, 매년 이맘때면 여전히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나온다”면서 “국민에게 이를 다시금 일목요연히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의 영화화에 나선 배경이다.

윤종성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은 천안함 폭침의 결정적 증거는 폭약성분 검출이라고 말했다. /사진=월간조선

육사 37기로 5군단 헌병대장, 대통령비서실 경호실장 보좌관 등 헌병병과에서 주요 보직을 역임한 그는 2007년 4월 장군 진급 이후 육군헌병 병과장 겸 수사단장을 거친 ‘수사 통’이다. 2010년 12월 만기전역(소장) 후에는 11년간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했다.

윤 전 본부장은 영화 제목을 <증거(Evidence)>로 정했다. 그는 “당시 작전, 해양, 선박 전문가들은 시뮬레이션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수사를 해본 사람들은 ‘증거’에 집중한다”면서 “모든 조사의 귀착점(歸着點)인 증거가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열쇠”라고 했다.

영화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극명한 대립 속에서도 실체적 진실을 찾아나가는 과정과 사건의 비극성, 생존장병과 유가족의 아픔과 희망, 그리고 이 사회에 던진 교훈 등을 모두 담을 예정이다. 지난 3월 2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그는 결정적 증거를 향한 여정부터 언급했다.

◇증거를 찾는 과정

# “성공했습니다. 영상이 복원됐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이 없습니다.” - 김옥년 중령

2010년 3월 31일 구성된 민군합동조사단은 이후 4월 12일 미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한국까지 5개국의 국제민군합동조사단으로 재편, 통신 분석, 생존자 진술 분석, 폭약 성분 분석, 사체 검안, 영상 및 사진 분석, CCTV 분석, 어뢰추진동력장치 수거 등의 절차를 밟았다.

“사건 한 달이 지난 시점인 2010년 4월 25일이었어요.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미 좌초설, 미(美) 잠수함 충돌설 등 온갖 억측이 난무했습니다. 이날 함수가 올라와 11개소 CCTV를 획득했고, 즉각 영상분석업체에 이를 보냈습니다.”

목적은 단 하나. 사고 당시 장면의 확보.

“그 장면만 확보하면 온갖 억측을 잠재울 수 있었죠. 그런데 디스크에 묻은 이물질 때문에 복원이 불가하더군요. 그때 조사본부원이 ‘본부장님, 폭발이 있었다면 디스크에 묻은 이물질은 알루미늄일 것이고, 이는 수산화나트륨 용액을 쓰면 녹일 수 있습니다’고 하더군요. 증거가 훼손이 되지 않게 수백 번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작업을 했고, 이 중 6개소 CCTV를 복원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결정적 장면은 획득하지 못했죠. 폭발과 같은 외부 충격이 있을 시 전후 1분간 작동을 멈추는 게 해당 CCTV의 메커니즘이었기 때문입니다. 참, 허탈한 순간이었죠.”

폭침 이틀이 지난 지난 2010년 3월 28일 오전 백령도 사고 해역에서 해군과 해경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조선DB

◇폭약 성분 검출

# “쉽지 않아요. 아니, 불가능합니다(It is not easy, No, it is impossible)” - 美 해군제독 에켈스 준장

윤 전 본부장은 “정황상 근거는 확실하지만, 이를 결정적 증거로써 밝히기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전까지는 대부분 시뮬레이션과 정황 근거들밖에 없었어요. 폭침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결정적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폭침이 확실하다면 선체에 폭약 성분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MIT공대 출신인 미(美) 조사 팀장 에켈스 해군 제독에게 물었습니다. ‘선체에서 폭약 성분을 검출하는 게 가능하겠느냐’고요. 그랬더니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시도해본 적이 있느냐’고 했더니, 그렇지는 않대요. 이론적으로 안 된다는 거였죠. 그럼 한 번 해보자 싶었던 거죠.”

손바닥만 한 거즈로 일일이 선체를 닦아보기로 했다. ‘미쳤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때 영국의 ‘브롬’이라는 과학수사요원이 희망 섞인 발언을 했다. 본인도 시일이 한참 지난 급조폭발물의 폭약 성분을 검출한 경험이 있다는 거였다.

“수사관들이 엄청 고생 많았습니다. 그 추운 4월 바닷가에서 밤낮없이 출렁이는 그 거대한 배를, 요 손바닥만 한 거즈로 일일이 닦았어요. 뿐만 아니라 선체로 유입된 벌(진흙)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일일이 손으로 걷어내서 따로 수거했어요. 혹시 그 안에 조그마한 쇳조각이라도 있을지 몰라서요.”

다 쓴 거즈는 트럭 2대 분량이었다. 분석 결과 함수(8개소), 연돌(8개소), 가스터빈실(13개소), 해저(7개소)까지 총 36개소에서 HMX, RDX, TNT 폭약 성분이 검출됐다.

흔히 ‘1번 어뢰’를 결정적 증거라고 본다. 그러나 윤 전 본부장은 “단 한 가지 증거만 말할 수 있다면 ‘폭약 성분’을 꼽겠다”고 했다. 그는 어뢰 수거 한 달 전 폭약 성분 검출 당시 “폭침이 확실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핵심 증거 중 하나인 어뢰추진체. /사진=조선DB

◇ 어뢰 추진 동력 장치 수거

# “그물 속에 이상한 물체가 들어 있어요!” - 대평 11호 김남식 선장

어뢰 추진 동력 장치 수거에도 난관이 많았다. 대형자석, 준설선 이용에서부터 스웨덴 조사팀의 아이디어로 수면 아래 일정 부분을 동결(凍結)시키는 방법까지 고려했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모두 무산됐다.

“그때 국방과학수사연구소장인 양승주 공군 대령이 와서 ‘전투기 추락 시에 ‘쌍끌이 어선’을 이용한다’면서 2006년 동해안(372m), 2007년 서해안(45m) 수거 사례를 들려줬습니다. 이튿날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게 이를 보고하니까 ‘한 번 해보라’고 해서 즉각 작업에 착수하게 됐어요.”

해군본부에서 파견된 조영두 중령의 지휘로 약 보름간 하루 최대 8차례 시도 끝에 5월 15일 어뢰를 건져 올렸다. 수거 작업 계약업체인 대평수산의 대평 11호 김남식 선장은 이날 오전 9시 25분 “그물 속에 이상한 물체가 들어 있다”고 했다. 국정원 확인 결과 이는 북한에서 제조, 사용 중인 CHD-02D 어뢰였다.

북한에서 제조 사용한 CHD-02D 어뢰 추진체가 ‘총알’이었고, HMX, RDX, TNT 폭약 성분이 ‘화약’이었다. 두 동강 난 천안함 선체가 ‘피해 물품’이었고, 46명의 용사가 피해자였다. 2010년 5월 20일 합조단은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 증거를 종합해보면 천안함은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으로부터 발사된 어뢰의 수중 폭발(비접촉)로 침몰했다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음모론자들

# “천안함은 좌초된 겁니다, 여러분!” - 음모론자 신상철

윤 전 본부장은 “진실을 밝힌 후 그 진실을 수호하기가 더 어려웠다”고 했다. 실제로 조사 결과 발표 이후 각종 음모론은 더 거세졌다.

대표적인 인물이 신상철 전 천안함 합동조사단 위원이다. 지난 2010년 《천안함은 좌초입니다!》를 펴낸 신씨는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추천으로 합조단에 위촉됐지만, 단 1회만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와 군이 천안함 침몰 원인을 은폐·조작하려고 했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결국 지난 2010년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과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박정이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군측단장, 윤종성 전 본부장 등은 신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1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 또한 신씨의 주장이 ‘허위사실’임을 인정했지만,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2022년 6월 9일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신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대법원은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수중 비접촉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돼 침몰했다. 좌초 후 잠수함 등과 충돌하여 침몰했다는 피고인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했다. 대법원 또한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을 밝힌 셈이다.

◇‘無知의 知’

# “(천안함 사건이) 뭐가 확인됐나. 폭발이 있었는지, 물기둥이 있었는지 (확실치 않고), 생존한 승조원들은 언론 접촉도 하지 않았다.” - 유시민(2018.3.1. JTBC <썰전>)

비단 신씨뿐만 아니다. 진실을 왜곡한 서적과 다큐멘터리는 수십 종에 달하며, 민주당은 물론, 친(親)민주당 성향 인사들은 최근까지도 의혹 제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들이 대표적으로 지적하는 것 중 하나가 선체 절단 문제다.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천안함은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수심 6~9m 위치에서 발생한 어뢰 폭발에 의한 충격과 버블효과 등으로 절단됐다. 의혹 제기자들은 “버블효과로는 천안함이 절단될 수 없고, 폭발이 있었는데 왜 화재도, 파편도 없느냐”고 말한다.

“폭발에는 육상 폭발이 있고 수중 폭발이 있습니다. 수중 폭발은 다시 접촉과 비접촉으로 나뉩니다. 접촉의 경우 육상 폭발처럼 화염, 불꽃을 동반하고 파편도 생깁니다. 그런데 어뢰가 배 하부로부터 7~9m 아래 수중 비접촉 폭발을 할 경우 충격과 버블효과가 일어납니다. 그 충격파는 에너지의 53%를 차지하는데 급격히 소멸되는 특색이 있습니다. 그리고 버블은 팽창, 수축, 팽창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파에 의해 1차 폭발이 일어나고 이후 수축했다가 다시 팽창하면서 버블이 붕괴돼요. 이때 2차 폭발이 일어나면서 버블 제트에 의해 배가 절단됩니다. 접촉 폭발의 경우 절단되지 않죠. 통상 함몰되거나, 파공이 생긴다거나 합니다. 이런 사정을 모르니 여러 정치인, 언론들, 심지어 과학자들도 선체 절단에 의혹을 제기하더군요. 육상 폭발만 생각해서 왜 파편도 없고 화재 흔적도 없냐는 거죠.”

그는 “그러한 주장을 보며 소크라테스의 ‘무지(無知)의 지(知)’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이후 합조단의 조사 결과는 국제사회에서도 검증됐다. 지난 2010년 6월 14일 참석한 미국 뉴욕 유엔(UN) 안보리 설명회에서다. 설명회는 중국·러시아를 비롯 15개 이사국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조사가 충분하고 철저하며 포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여러 이사국이 질문을 했지만 조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가는 없었다. 윤 전 본부장은 “미국 부대사와 일본 대사는 설명회 리허설부터 참석해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면서 “설명회 당시 중국 대사는 눈치만 봤고, 러시아 대사는 북한을 비판하는 튀르키예·프랑스 대사에게 ‘이곳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국가 위기 대응 문제는 왜 반복되는가’

수중 비접촉 폭발로 완전히 두 동강난 천안함 선체. 사진=조선DB

돌이켜보면 이 사건은 좀 더 명료하게 풀릴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든다. 폭침 당일의 기록이다.

# “뭔 거 같애?” “어뢰 같은데요. 함미가 아예 안 보입니다.”

- 2010년 3월 26일 22:32~22:42 전대장과 함장 대화

# “귀국 침몰 사유 통보할 것.” “본국 어뢰, 어뢰, 어뢰로 사료됨. 이상.”

“어뢰가 정확한가?” “어뢰로 판단됨.”

- 2010년 3월 26일 21:51~21:52 무선병과 통신장 대화

“보시다시피 처음부터 이미 ‘어뢰’가 언급됐습니다. 그러나 2함대 사령관 등 해군 수뇌부는 상부에 ‘어뢰’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 보고했죠. 원칙대로라면 현장 지휘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정부에서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등 정치적 고려로 인해 조심스러웠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사고 발생 시 국가 및 군사지도자의 초기 대응 실패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애초 사건 발생 시각 발표에도 혼란이 있었다. 천안함은 2010년 3월 26일 21시22분 백령도 서남방 2.5km에서 침몰했다.

“당시 우리는 최초 국방부에서 사건 발생 시각 발표를 2함대에서 합참에 보고한 시각이었던 21시45분으로 했습니다. 이후 함대에서 구조 요청을 보낸 시각인 21시30분으로 정정했다가 21시22분으로 최종 발표를 한 것이죠.”

영화에는 이러한 군(軍)의 자기반성도 담을 생각이다. 윤 본부장은 “천안함 폭침 직후 함장을 비롯한 승조원의 전술적 대응은 허점이 없었지만, 합참과 국방부 등 군 수뇌부의 전략적 책임에 대해서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 본부장은 이어 “우리 사회가 천안함 사건을 교훈으로 삼고 있는지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6·25 이후 최대 안보 참사’를 겪은 지 13년이 지났지만, 이태원 참사, 무인기 침범 등 국가의 위기 대응 방식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변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옳은 일’을 하지 않아서예요. 사후강평(AAR·After Action Review)하지 않고, 교훈으로 삼지 않는 거죠. 국방부 조사본부가 증거를 획득하는 과정은 2개월도 채 되지 않지만, 그 전에 무수히 많은 학습과 훈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한 국가의 위기관리시스템은 만들어놓는 게 능사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 ‘작동’하는 게 관건입니다. 그러려면 평시에도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훈련해서 몸이 자동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의 삶

# “군인 여러분,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저희처럼 버림받습니다.” - 천안함 생존자 전우회

윤 전 본부장은 또한 “생존 장병들의 삶과 절규도 중점적으로 조명해야 한다”고 했다.

“58명의 생존 용사들 중 24명이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는데, 2021년 3월 기준 12명만이 받아들여졌습니다. 대부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고요. 상이연금 증빙자료로 트라우마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수년간의 의무 기록을 제 손으로 정리하고, 심사를 기다리는, 말도 안 되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다 다쳤는데, 그 고통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다니요. 국가의 보훈 책임은 어디서부터 어디일까요. 이 또한 한 번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유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매년 3월, 기일과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을 찾은 정치인들 옆에서 ‘반짝’ 주목받을 뿐이다. 아직까지 천안함 폭침은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제대로 실리지도 않았다.

그는 “매 순간 지속되는 아픔 속에서도 또 다른 희망을 찾아가는 유가족들을 보면 가슴이 저민다”고 했다. 고 한주호 준위의 딸은 교직원의 꿈을 접고 지난 2015년 해군 군무원이 됐다. 고 김태석 원사의 딸은 2021년 8월 해군 군 가산 복무 장교로 합격해 2025년 임관을 앞두고 있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이 모든 이야기가 스크린에 어떻게 담길지 궁금하다. 윤 전 본부장은 “3월 말부터 영화사와 교섭에 들어갈 계획”이라면서 “차질 없이 진행하면 약 2년 뒤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더 자세한 기사는 <월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