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업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고(故) 김수근(1931~1986)이 설계했던 주일본 한국대사관저는 2010년대 재건축 과정에서 철거됐다. 역사적·건축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원형의 보존과 계승에 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수근 건축가.

주일 대사관 청사와 관저는 도쿄의 중심 지역인 미나토구 미나미아자부에 위치하고 있다. 대지 면적이 3000평이 넘는데, 1951년 재일교포 사업가인 고(故) 서갑호(1915~1976)씨가 부지를 매입해 우리 정부에 무상으로 대여하다 11년 뒤 기부를 했다. 정부는 1978년 부지를 확장해 대사관 청사와 대사 관저를 신축했다. 특히 김수근이 설계한 석조 대사관저는 조선시대 석호·망부석·석등이 조화롭게 놓여 있는 메인 정원과 우리 한옥의 안마당을 연상시키는 실내 정원,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신상호 도예가의 백자 7개 등 한국 고유의 미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부는 2008년부터 재건축 사업을 추진했다. 외교 당국자는 “기존 청사와 관저가 30년 이상 경과한 노후 건물이고, 내진(耐震) 설계가 취약해 강진 발생 시 붕괴 위험이 높은 점을 감안했었다”고 했다. 2010~2013년 약 900억원을 들여 7층 청사와 2층 관저, 차량을 140대 넘게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 등이 신축됐다. 도쿄 내 대사관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현대화된 시설을 갖추게 됐지만, 이 과정에서 김수근 설계 관저는 완전히 철거됐다. 프랑스 정부가 주한 대사관을 신축하면서 ‘김중업 건축가의 설계 원형 복원’에 우선 순위를 두었던 것과는 대비된다.

한 외교부 인사는 “당시는 한국 위상에 맞게 노후화된 시설을 개선하자는 주장이 우세했는데, 돌이켜보면 원형 보존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다만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인도 뉴델리의 주인도대사관(1979년), 미국 워싱턴DC의 주미대사관저(1986년) 등은 현재까지도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