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26일(현지 시각) 정상회담을 통해 ‘핵우산(확장 억제)’ 강화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지만 외교가에선 “한국이 핵우산을 강화하는 대신, 자체 핵무장이라는 카드 하나를 버린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번 회담에서 한국이 나토 핵 공유 협의체인 ‘핵기획그룹(NPG)’과 같은 핵우산 상설 협의체를 미국과 신설하는 데는 합의했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히면서 앞으로 자체 핵무장을 논의할 명분은 약해졌기 때문이다. 전술핵 재배치도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핵을 억제하는 것은 협정이 아니라 핵으로 맞서는 것뿐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육군 예비역 중장인 정연봉 한국국가전략연구원(KRINS) 부원장은 “한미 간에는 이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한미억제전략위원회(DSC) 등 여러 양자 협의체를 운영해 핵우산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면서 “새 협의체가 내실을 갖추려면 당장 한미 연합사에 지침을 줄 만한 구체적 사항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핵 추진 잠수함 개발, 잠재적 핵보유국 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성과물이 이번 합의에서 나오길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핵우산 상설 협의체 신설은 이전 정부에서 하지 못한 성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북한의 대남 핵 사용을 억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과 같은 핵 재처리 능력을 갖추도록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끌어내길 기대했는데, 이번 회담에서는 공개적으로 논의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우리가 핵무기를 가져도 한미 동맹이 약화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미국이 국방비 절감, 대북·대중 핵 억지력 공유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걸 강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한국의 NPT 준수’ 입장을 강조한 것은 최근 커진 ‘한국 핵무장론’을 완화하려는 의도일 것”이라며 “핵무장은 장기 플랜으로 이어가고 일단 잠재적 핵무장이 되기 위한 재처리 기술 확보는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4일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관련 브리핑에서 “한국은 NPT 의무를 잘 이행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육군 예비역 준장인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KRIS) 소장은 “새 핵우산 협의체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커진 한국의 ‘핵무장’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립서비스, 말치레가 돼선 안 될 것”이라면서 “이번 핵우산 합의가 이전보다는 진전됐겠지만 미국과 나토의 ‘핵공유’ 체제와 이를 운용하는 조직인 NPG 수준에는 못 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북(對北) 핵우산과 관련해서는 한국 대통령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반영한다는 식의 문구가 한미 합의 문건에 들어간다면 큰 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의 핵 사용은 미 대통령의 결정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주 소장은 “한미 간 핵 사용 의견이 일치할 경우는 문제없지만, 한국에는 큰 위협인데 미국에는 별 위협이 되지 않는 애매한 북핵 위기가 발생할 때는 핵우산이 제때 제대로 펴지지 않을 수 있다. 적은 이런 걸 노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도 “핵 협의를 세 번 하다 두 배 늘려 여섯 번 한다고 핵우산이 두 배 더 강해지는 건 아니다”라면서 “북한에 ‘핵 사용 시 정권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확실한 경고를 줄 수 있도록 대량 응징 보복무기 개발, 핵 추진 잠수함 확보 등과 같은 획기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이번에 정부가 NPT 준수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자체 핵무장의 불씨를 완전히 꺼버려서는 안 된다”면서 “이를 위해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어느 정당이 집권하든 한국은 대중·대북 정책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고 한미 동맹을 지킨다는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