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는 26일(현지 시각)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철통같은 양국 관계를 확장해 21세기의 가장 어려운 과제들에 정면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을 선언한 한미가 북핵 외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 대만 문제 등 글로벌 이슈에서도 공조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높아진 위상과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하겠다는 우리 의지와 미국 측 기대가 두루 반영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한미는 이날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문제인 대만 문제에 대해 “역내 안보와 번영의 필수 요소로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했다. 회담에 앞서 중국이 “대만 문제로 불장난하면 불에 탈 것”이라고 위협했지만, 우리가 밝힌 원칙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특히 “불법적 해상 영유권 주장, 매립 지역 군사화 및 강압적 행위 포함, 인도·태평양에서의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5월 한미가 발표한 공동선언문에는 없던 내용이다.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에서 7개 암초를 매립해 요새화하고, 베트남·필리핀 등 동남아에서 거의 모든 국가와 해상 영토 분쟁을 빚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문구로 풀이된다. 이에 중국은 다시 바로 반박했다.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한미가) 대만 문제 실제를 똑바로 인식하고, 언행에 신중을 기해 잘못되고 위험한 길로 점점 멀리 가지 말라”고 했다.
한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놓고는 “러시아의 침략 전쟁을 규탄한다”며 “자국 주권과 영토 보전을 수호하는 우크라이나에 국제사회와 함께 연대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무고한 인명 피해를 야기하는 무력 사용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살상무기 등) 직접적 군사 지원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가 없었다”고 했다. 양국은 또 “제재 및 수출 통제 조치를 통해 책임을 물어 러시아의 명백한 국제법 위반에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했는데, 다음 달 일본에서 열리고 한국도 초청받은 주요 7국(G7) 정상회담에서 ‘대러 전면 수출 금지’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강력한 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은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주도하는 여러 안보·경제 분야 협의체 활동을 지지하고 참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미국·영국·호주 간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에 대해 “역내 평화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미국의 협력적 노력에 지지를 표명한다”고 했다. 한국은 이미 미·일·대만과 반도체 공급망 협력 대화인 ‘팹4(Fab Four)′에 참여하고 있고, 인도·호주 등이 포함된 ‘쿼드(Quad)’와도 실무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창설돼 한국이 초대 회원국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는 “올해 부산에서 4차 협상회의를 주최할 것”이라고 했다. IPEF는 자유 진영 국가들 간 새로운 경제·통상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을 띠고 있어 중국은 “디커플링에 반대한다”고 여러 차례 비판해왔다. 그럼에도 한미는 “경제적 강압과 외국 기업과 관련된 불투명 수단의 사용을 포함한 경제적 영향력의 유해한 활용에 대해 깊은 우려를 공유하고, 반대를 표명한다”고 했다. 이 밖에 한미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 감축, 재생에너지와 수소 기술 개발 등에서 협력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공동선언에는 양국이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반도체법에 대해 추가 논의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양 정상은 IRA와 반도체과학법이 기업 활동에 예측 가능성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상호 호혜적인 미국 내 기업 투자를 독려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약속했다”고 돼있다. 미국이 한국 기업들의 우려를 해소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추후 협의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