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각) 미 의사당에서 44분간 영어로 연설을 한 뒤 미 의원들은 “놀랍다” “멋지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정상들이 미 의회에서 연설하면 대부분 ‘읽는’ 수준인데, 윤 대통령이 진짜 ‘연설’을 하는 모습을 보고 현지 반응이 뜨거웠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달 초 김대중 전 대통령 사례 등을 참고해 영어 연설을 택했고, 연설 준비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한글로 된 초안을 바탕으로 외교부 측에서 작성한 영어 연설문을 보고받고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처음부터 다시 쓰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모는 “초안에는 어려운 단어나 현란한 문장이 많았다”며 “대체할 용어가 없는 단어 빼고는 모두 쉬운 단어로 바꾸라는 지시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통역을 담당하는 외교부 출신 김원집(32) 행정관을 언급하며 “김 행정관이 통역하는 것처럼 쉽게 쉽게 작성하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과 10여 회에 걸쳐 연설문 독회를 하면서 표현을 수정하고 줄이기를 반복했다. 일부 표현 오류도 윤 대통령이 직접 잡아냈다고 한다. 막바지엔 실제 미 의회 현장에서 연설하는 것처럼 프롬프터를 활용해 실전 연습도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혼자서도 연습했는지 독회를 한 번씩 마칠 때마다 발음이 좋아졌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평소에도 “영어는 악센트가 중요하다”는 말을 종종 한다고 한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한 인사는 “윤 대통령이 대학생 때부터 영어 신문을 구독해서 읽었고, 검사 시절에도 영어 방송을 틀어 놓는 게 습관이었다”고 전했다. 유학 경험 등이 없는 ‘토종’이면서 영어 발음이 나쁘지 않은 이유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때도 영어 발음을 신경 썼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보고를 들어갔다가 ‘페이스북’(Facebook)을 별생각 없이 ‘p’로 발음했는데 윤 대통령이 직접 ‘f’ 발음으로 정정해 줬다”며 “보고서에 약자나 처음 보는 영어 단어가 있으면 철자를 물어본 적도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BTS가 저보다 백악관을 먼저 갔지만, 여기 미 의회에는 다행스럽게도 제가 먼저 왔네요”라고 하자 장내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전 배포된 연설문에는 없었던 일종의 ‘애드리브’였다. 윤 대통령은 또 “제 이름은 모르셨어도 BTS와 블랙핑크는 알고 계셨을 것”이라고 농담도 던졌다.